입산부터 적준, 다원까지…악명 높은 철거 업체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철거왕(撤去王)이라는 단어는 철거민(撤去民)들에게 여전히 악몽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이후 불법적 행위를 동원해 철거 현장을 장악한 일부 철거 업체 가운데서도 폭력성 등이 짙으면서 가장 활발히 활동해 온 업체들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철거왕들이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일부 철거민은 “우리들의 피와 눈물로 세워진 황금의 제국”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그동안 ‘철거왕’이라고 불리었던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철거 시초의 1980년대 입산, 무창, 범양 등
전성기 맞은 1990년대 적준, 일진, 동무 등


철거 용역 회사가 생겨난 것은 1980년대 이후 재개발사업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면서라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철거에 따른 분쟁 역시 민간끼리 해결해야 된다는 기조가 생겼고 철거 용역 회사가 난립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철거용역 회사의 시초는 1986년 12월 설립된 (주)입산개발이다. 입산 이름 아래 3개사의 용역 회사가 있었고 사당동, 돈암동, 동소문동의 철거권을 따내면서 대표적 철거용역 회사로 이름을 알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당시 서초구 우면지구를 담당한 무창인력과 범양용역, 따이한용역도 당시 유명한 철거 업체로 알려진다. 여기까지가 대체로 철거 용역의 시작점으로 분류된다.

이후 입산개발을 전신 삼아 1990년 (주)적준개발용역이 설립됐고, 철거 전문 업체들이 전성기를 맞이한다. 적준개발용역은 적준토건, 적준환경, 적준산업 등의 철거 관련 회사를 설립한 뒤 1990년대 중반 이후 재개발 현장의 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적준은 서울 등의 철거현장 31곳에서 83건의 폭력을 행사하고 주거침입, 성폭행, 성추행, 재산손괴, 방화 등을 90여 차례 저지르는 등 온갖 불법행위를 통해 가장 확실한 철거회사로 악명을 떨쳤다.

아울러 1990년대 중반은 적준개발용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축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거산, 인덕 등 업체는 다소 밀려난 동시에 협승, 동무, 일진 등의 철거용역 회사들이 설립된 시기다.

그 다음은 가장 이름값이 높은 다원그룹이다. 다원그룹은 한때 국내 철거 시장의 80%를 장악할 만큼 막강한 철거 전문 회사였다. 특히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은 20대 초반인 1980년대 후반, 적준에 입사한 이후 27세에 대표로 취임했다.

알려진 바로는 당시 이 회장은 이미 서울지역 철거지 34곳 중 17곳에서 철거사업을 따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단숨에 업계 1인자로 올라선 이 회장은 폐기물 업체를 추가로 만들어 철거 현장 한 곳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잔재를 처리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행사와 시공사를 설립해 도시개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수천억 원대의 자금을 굴리며 10억 원을 호가하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등 본격적인 철거왕의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손해를 보자 사업자금, 로비자금을 마련하고자 회삿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사회 결의 없이 담보도 받지 않은 채 경기지역 도시개발사업에 나선 계열사에 150억 원을 부당 지원함으로써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

또 공사를 따내기 위해 정·관계를 대상으로 뇌물을 건네는 등 전방위 로비 행각을 벌였다. 이러한 행각은 다원그룹의 한 직원이 2008년 세무조사를 선처해주는 대가로 전·현직 세무공무원 3명에게 5000만 원을 건넨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고 수사에 나선 뒤 줄줄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뇌물공여 등 이금열 회장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고 철거왕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됐다. 현재 이 회장은 복역 중이다.

한편 다원그룹을 제외한 대표적인 철거 업체는 ▲참마루건설 ▲삼오진건설 ▲호람건설 ▲비조이엔지 ▲우림토건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올해 초까지 다원의 뒤를 이어 최대 철거 업체였던 삼오진건설은 2005년 설립 이후 10대 업체로 이름을 알려 왔다.

철거왕으로 통하던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이 2013년 구속된 뒤, 막강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철거 시장 1위 자리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다만 지난 6월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삼오진건설과 함께 서울·경기 지역의 철거왕이었던 우림토건 역시 2015년 회장 고모씨가 왕십리3구역·가재울3구역 재개발조합 법무용역계약 수주 청탁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건설산업기본법위반 등)로 기소돼 징역 5년·추징금 6억7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폭력 철거의 온상…철거왕의 잔인함은 어디까지

철거왕이라 불리는 일부 철거 업체들은 단순히 사세 확장과 부의 축적으로 유명해진 것만은 아니다. 각종 범죄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했고, 그 폭력성이나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철거왕이라는 악명을 얻은 것이다. 

과거 강제퇴거금지법제정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전국철거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철거 업체에 의한 피해 증언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현재 개발현장에 나타나는 철거용역업체들은 대부분 과거 적준 출신”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재개발현장을 전부 차지한 뒤 폭력·살인 철거로 악명이 높던 적준은 처벌은 고사하고 다원건설로 이름을 바꾼 이후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며 “현장에선 폭력과 협박이 난무하지만 보호 대책이 너무나도 부실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도시빈민여성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운동사랑방 등 12개 업체가 모인 적준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1998년 발간한 적준 철거범죄 보고서에도 철거 업체의 실상은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이에 따르면 적준의 사원은 10여 명 안팎이지만 상시 동원 능력은 100여 명에 달했고, 선봉대와 기습조로 편성된 인원들이 30∼50명씩 몰려다니며 폭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적준이 서울 등 철거현장 31곳에서 저지른 폭력 사례는 밝혀진 것만 83건이다. 이 과정에서 2명이 숨졌고 490여 명이 부상당했다. 주거침입, 성폭행, 성추행, 재산손괴, 방화 등도 90여 차례 저지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어떤 철거업체라도 개발사업 과정에서 인권침해 대가로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는 같다”며 “검찰은 문제가 발생한 개발사업 구역에 개입한 철거용역업체, 시공사 등에 대한 특별수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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