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고베제강 스캔들 이어 도레이가 가세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꼼꼼하고 정확하게 각종 제조 물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수출함으로써 ‘장인(匠人)들의 나라’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었던 제조업 강국 일본에서 최근 잇단 품질관리 스캔들이 불거져 ‘메이드 인 재팬’이 추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스캔들의 가장 최신 사례는 도레이(東レ)주식회사다. 한국에도 대규모로 진출해 있는 도레이는 2014년 매출 기준으로 미쓰비시, 스미토모, 미쓰이에 이어 일본 4위, 세계 21위 거대 화학기업이다. 세계최대 화학회사는 독일 바스프(BASF)이며, 국내 1위 LG화학의 세계 순위는 13위다. 도레이는 1926년 일본 시가현(滋賀縣)에서 미쓰이물산(三井物産)에 의해 ‘도요레이온(東洋レヨン)’이라는 사명(社名)으로 설립된,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 일본 간판기업이다. 도레이는 세계 1위 사업 31개와 세계 유일 사업 7개, 세계 최초 사업 10개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화학회사다. ‘넘버원(Number One)’이라 불리는 1위 사업에는 폴리에스터 필름, 폴리에스터 면혼(綿混)직물, 탄소섬유 등이 있다. ‘온리원(Only One)’이라 불리는 유일 사업에는 PPS(폴리페닐설파이드)필름, 파라 계(系) 아라미드 필름, 혈액정화기, 폴리아미드 컬러필터 등이 있다. ‘퍼스트원(First One)’이라 불리는 최초 사업에는 나노합금 필름, 인터페론 제제(製劑), 혈관확장제 유도체, 인공피혁 등이 있다. 한마디로 대단한 화학기업이다. 서양에는 이 회사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탄소섬유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닛카쿠 아키히로(日覺昭廣) 도레이 사장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회사 도레이하이브리드코드가 제품의 강도 등 검사 데이터를 조작해 출하했다"고 밝히며 사죄했다. 도레이에 따르면, 차량 타이어의 보강재를 만드는 도레이의 자회사 도레이하이브리드코드는 2008년 4월부터 작년 7월까지 고객과 약속한 품질에 못 미치는 제품들의 데이터를 조작한 뒤 149차례에 걸쳐 납품했다. 도레이는 작년 7월 사내 설문조사에서 품질 조작 문제가 불거지자 납품된 제품들의 품질 데이터 약 4만 건을 재조사했다. 데이터 조작은 품질 보증을 담당하는 부서의 당시 관리자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닛카쿠 사장은 “현 단계에서 품질 조작 제품과 관련한 안전성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품질 데이터를 관리직뿐만 아니라 여러 직원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내용의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아사히·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신문들은 “일본 미쓰비시그룹 산하 미쓰비시머티리얼이 미쓰비시전선공업과 미쓰비시신도(伸銅), 미쓰비시알루미늄 등 자회사 3곳의 검사기록을 자체 감사한 결과 고객이 요구한 품질이나 사내 기준에 미달한 제품들이 출하됐다”고 보도했다. 미쓰비시전선과 미쓰비시신도는 기준 미달 제품을 각각 229개사, 29개사에 납품했다. 데이터가 조작된 제품을 일본 자위대를 포함한 258개사가 사용한 셈이다. 미쓰비시알루미늄도 기준미달 제품을 출하했지만, 모든 고객으로부터 안전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수치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자회사들에 대한) 관리체제를 강화하고 재발을 방지하겠다”면서도 “현 시점에서는 법령위반이나 안전성을 의심할 사안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 열도에서 파문이 퍼져가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은 앞선 고베제강의 품질조작을 함께 거론하며 미쓰비시전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소재산업 제조 현장의 품질관리체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이보다 앞서 10월 초순에는 일본 3대 철강업체인 고베제강소가 자동차와 항공기 등에 사용되는 알루미늄과 구리 제품 일부의 품질검사 자료를 조작해 도요타자동차 등 수요 업체에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 NHK 등 일본언론의 10월 9일 보도에 따르면, 고베제강소는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출하한 제품 가운데 4%가 사전에 정해진 제품 강도를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검사 자료를 조작해 200개 업체에 공급했다. 문제가 된 물량은 2만t이 넘는다. 불량품은 도치기현, 미에현, 야마구치현에 있는 고베제강소 공장과 가나가와현의 자회사 공장 등 총 4곳에서 생산됐다. 알루미늄 제품 1만9300t, 구리 제품이 2200t에 이른다. 수십 명이 가담해 납기와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 조작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납품 계약 당시 여러 번 품질검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한 번만 검사하고 서류를 조작하기도 했다.
고베제강이 도요타·닛산 등 주요 자동차업체에 품질데이터를 조작한 자재를 납품한 데 이어 이번에는 닛산자동차에 이어 스바루도 완성차의 품질검사를 무자격자에게 맡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10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스바루는 군마현에 위치한 공장에서 연수중인 무자격 직원들이 출고 전 완성차 품질검사 업무를 담당해 온 것을 확인했다. 이번 조사는 닛산 사태 이후 국토교통성이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검사 공정을 자체적으로 확인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이뤄졌다. NHK는 “완성차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격을 갖춘 검사원이 품질검사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며 “일본차 품질관리 체계가 추궁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간 업체에 맡겨졌던 완성차 검사제도에도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앞서 닛산은 무자격자에게 출고 전 신차 품질검사를 맡긴 후 ‘거짓 해명’한 사실까지 적발돼 내수용 차량 생산을 2주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적발 이후에도 무자격자 검사가 오랫동안 이뤄졌다’는 지적에 “오랫동안의 관행이어서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닛산자동차가 신차 출고 전 자동차 안전검사를 무자격자가 진행한 기간은 무려 38년이었다. 닛산에 이러한 부정행위가 장기간 지속된 이유로 ▲사측의 생산량 확대와 비용 삭감 압박 ▲검사 현장 인원 부족 ▲직원들의 법규 준수 의식 부족 등이 꼽혔다. 닛산차의 부정행위가 드러나면서 일본 제조업의 장인정신(모노즈쿠리)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