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도승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커피는 16세기 이후 유럽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전 유럽에 커피의 붐이 불게 된 시기는 네덜란드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커피나무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심어 재배에 성공한 1700년 이후로 볼 수 있다.
 
네덜란드는 자바섬에 대규모 커피농장을 만들어 전 유럽에 수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내기도 하였다. 그 이후 런던에는 300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으며 프랑스에서는 1800년 중반에 파리의 시내 곳곳에 카페가 생겨 포화상태에 이르렀었다고도 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까? 시초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커피 박물관을 운영하는 박중만 관장이 발견한 자료들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개화 이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져 있던 나라였으나 1858년 영국인들이 부산항에 정박하고 관찰한 조선인의 모습을 기록한 자료가 발견되었으며 그 이후로 상인들이 서양인들과 다양한 교류가 있었던 기록들도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커피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1883년으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조선에 머무르며 조선의 풍습과 문화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저서에서다.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라는 책에는 조선의 커피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 는 내용이 담겨있어 이미 당시에 커피가 성행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커피 역사도 꽤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짐작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아관파천보다 12년이나 이전의 기록으로 항간에 정설처럼 여겨졌던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때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고 하는 설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최초로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으나 고종황제가 커피애호가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 커피는 새까만 탕국과 같은데 서양에서 온 음료라 하여 ‘양탕국’ 혹은 커피의 한자음을 그대로 쓴 ‘가비’라 불렸다. 고종황제는 커피를 마시며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 난 후부터 무얼 먹어도 쓰더구나, 하지만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진다."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상황과 아픈 역사에 커피가 함께하며 위로가 되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구한말 개화를 통해 커피가 보급이 되면서 다방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 위주의 다방들 사이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최초의 다방 ‘카카듀’가 문을 열었다. 영화감독이던 이경순이 개업한 다방 ‘카카듀’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우리의 암울했던 시대에 지식인들의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 ‘제비’나 극작가가 연 ‘프라타라’, ‘비너스’ 등 다방이 생겨나면서 우리 음료시장은 암울한 역사와는 달리 빠르게 근대화를 맞이하게 된다.
 
비록 우리의 음료는 아니지만 아픈 역사 속에서 위로와 치유가 되어주었던 커피는 진한 향만큼이나 깊고 따뜻한 안식처가 되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가비’에서 ‘커피를 볶을 때는 과일 향과 꽃향기가 섞여나고 잘게 부술 때는 커피만의 고소한 향이 난다. 뜨거운 물에 우려낼 때는 은은한 신맛과 쓴맛이 나며 마신 뒤 혀끝에 남은 맛을 느끼면 이 모든 향이 맛으로 변해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대사가 있다.
 
커피의 이런 매력은 쓰고도 달콤하며 향긋하고 고소한 우리의 인생과도 많이 닮아 있다.
 
달콤 쌉싸름한 커피 한잔은 오래 전 그때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활기찬 하루를 기원하고 잠시 쉼의 시간을 준다. 그저 오랜 친구처럼 든든하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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