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어달리는 럭셔리 레일크루즈, ‘그랜드 트랜스-시베리안 익스프레스’보다 품격 높은 여정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꿈을 선사하는 여행자들의 새로운 로망.
 
        가장 아름다운 구간, 환바이칼 철도
 
울란우데 투어를 마치고 늦은 밤 GTSE에 탑승한다. 열차는 다음날 새벽 여정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지나간다. 1957년까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운행 구간이었으나 새로운 단축 철로가 놓이면서 지금은 관광용 철도로 이용되고 있는 환바이칼 철도다.

이른 새벽 차창 밖으로 구름 낀 하늘 아래 안개가 자욱한 바이칼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의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되어 영원히 멈춰버린 듯 고요하기만 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호숫가의 간이역에 열차가 정차한다.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 승객들은 기차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거나 마을과 호수를 산책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호수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Day 7 to8, 이르쿠츠크
 
리스트반야카의 레스토랑에서 오물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버스로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면 첫 호텔 숙박이 기다리고 있다.

열차 객실이 아닌 호텔에서의 숙박에 몸이 한결 가뿐해진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 후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여행이 시작된다. 이르쿠츠크는 키로프광장, 구세주교회, 주현절 성당 등이 하나의 코스처럼 이어져 있어 짧은 일정에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

독일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식사 후에 중앙시장과 130지구를 돌아보고 발콘스키집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프라이빗 콘서트를 관람하면 다시 떠나야 할 시간. 노란색과 에메랄드빛을 띤 아름다운 고전주의 양식의 이르쿠츠크 기차역에서 다시 열차에 몸을 싣는다.
 
      바이칼 호숫가 야외 바비큐, 포트 바이칼
 
포트 바이칼은 환바이칼 열차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며 어촌 마을인 리스트비얀카로 떠나는 여객선이 운행하는 곳이다.

포트 바이칼에 도착하면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은 현지인들의 환영 공연이 열리고, 바이칼 호수를 감상하며 야외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낮잠을 즐겨도 좋을 만큼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시간, 한 번 들어가면 10년이 젊어진다는 바이칼 호수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가능하다.

단, 여름에도 호수의 물 온도는 15도를 넘기지 않을 정도 로 차갑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운동과 주의가 필요하다.
 
네르파와 오물이 있는 작은 어촌마을,
리스트비얀카

 
리스트비얀카는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은 어촌마을로 포트 바이칼에서 페리를 타고 이동한다. 바이칼 박물관에는 바이칼 호수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을 비롯해 호수와 관련된 각종 정보들이 잘 설명돼 있다.
      바다표범의 일종인 네르파가 호수에 살고 있는 점이 의아하다. 북극에 살던 네르파가 빙하기 때 강을 따라 헤엄쳐 왔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리스트비얀카의 호숫가에서는 가족과 연인들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낸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노천시장에서는 바이칼 호수에서만 잡힌다는 오물을 맛볼 수 있다. 연어과 어류인 오물을 맛보지 않았다면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오물은 상징적이고 그 맛 또한 뛰어나다.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1825년 12월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청년들의 비밀결사인 ‘데 카브리스트’들이 이곳 이르쿠츠크로 유배됐다. 일찍이 유럽의 발전상을 목격했던 이들의 영향으로 이르쿠츠크의 거리와 건물은 유럽 스타 일로 변해 갔고 새로운 귀족 문화가 꽃을 피웠다.
 
     ▲ 키로프 광장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앙가라 강 근처에 자리 잡 은 역사의 중심지로 소련의 혁명가 세르게이 키로프를 기리기 위해 이름붙여졌다. 주정부 청사 뒤쪽에는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고, 1961년에 조성된 광장의 공원은 이르쿠츠크 시민들의 아늑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광장에서 앙가라 강변에 이르는 길에는 이르쿠츠크 주에서 태어난 전쟁 영웅 벨로보로도프 장군의 흉상을 만날 수 있다.
 
     ▲ 구세주 교회
키로프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구세주 교회는 예배당 안이 아닌 건물 외벽에 프레스코 화법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다. 외벽의 성상화는 부랴트인이 세례를 받는 장면, 이르쿠츠크 최초의 주교가 임명되는 모습 그리고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 바로 옆, 성 피터와 페브로니아 부부상은 가족을 수호하는 성인으로 평생을 약속한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행복을 빌곤 한다.
 
     ▲ 주현절 성당
주현절 성당은 동시베리아에서 구세주 교회 다음으로 오래된 석조 건물로 알려져 있다. 1693년에 처음 건설됐으며 이르쿠츠크 대화재로 불에 탄 후, 1718년에 다시 벽돌로 재건됐다. 19세기에는 지진이 발생해 성당의 지붕이 손상되기도 했으며 종교가 억압받던 구소련 시절에는 평범한 빵집으로 사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성당 건너편 앙가라 강변에는 총을 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이르쿠츠크 도시 설립자의 동상이 서 있다.
 
     ▲ 즈나멘스키 수도원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 수도원으로 내부는 경건한 성화와 금빛 장식들로 가득하다. 수도원 앞에는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의 최고 지도자이자 흑해 함대 사령관이었던 콜착 제독의 동상이 있다. 10월 혁명 당시 볼셰비키에 맞서 싸우다 총살당한 콜착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 수도원에 들어서면 쿠릴섬과 알래스카를 처음 발견한 탐험가 셀리호프를 비롯해 데카브리스트들 및 그 가족들의 묘가 있으며, 시베리아 지역의 포교에 크게 공헌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노켄트 대주교의 미라와 황금관도 보존돼 있다.
 
     ▲ 폴란드 성당
1884년에 이르쿠츠크로 유배된 폴란드 공동체에 의해서 지어진 로마-가톨릭 양식의 건축물로 폴란드 문화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여타 종교 시설과 마찬가지로 구소련 시절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됐고 소련이 붕괴된 후에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이루어지는 경건한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성당 안에 독일에서 특별 주문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어 오래 전부터 이르쿠츠크 필하모니의 연주홀로 사용되고 있다.
 
     ▲ 중앙시장
이르쿠츠크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1848년 장작과 건초를 팔던 장터에서 시작된 곳으로 지금은 현대화된 높은 건물 안에 육류, 생선, 꿀, 치즈, 꽃 등 신선하고 질 좋은 식료품과 여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건물 외부의 야외시장에는 과일이나 야채가 주를 이루며 구스베리, 러시안체리, 블랙베리, 블루베리, 빌베리, 링곤베리 등 다양한 베리 종류가 판매되고 있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조금씩 구입해 맛보는 소소한 재미를 누려보자.
 
     Day 9,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투어가 약 4시간 동안 타이트하게 이어진다. 차소브냐 예배당을 거쳐 엔지강 일대를 산책한 후, 유람선을 타고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 아쉽기도 하지만 열차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집으로 가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다.
 

시간을 달리는 열차
 
이르쿠츠크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무려 21시간이 소요된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러시아에는 11개의 시간대가 공존한다. 그중 GTSE를 타면서 지나가는 시간대는 총 4개.

베이징에서부터 울란바토르, 울란우데, 이르쿠츠크까지는 동일한 시간대를 이용하지만 크라스노야르스크부터는 1시간이 빨라지므로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이 구간에는 울창한 침엽수림 타이가가 끝없이 펼쳐진다.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를 매료시킨 진정한 타이가가 바로 이 구간에서 숨 쉬고 있다.
    해가 저무는 시간, 다홍빛과 보라색으로 물든 서정적인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긴다.

다음날 아침에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짧은 강의가 진행되며 끊임없이 교차하는 시베리아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다 보면 마침내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발을 딛는다.
 
    떠오르는 붉은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붉은색의 모자이크화가 ‘붉은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의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린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중공업 도시임에도 도시를 둘러싼 자연 풍경이 아름다워 작가 안톤 체호프는 크라스노야르스크를 시베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칭한 바 있다.
 
   ▲ 차소브냐 예배당
투어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시각장애인의 수호성인이자 로마시대에 순교한 파라스케바 성녀를 기념하는 작은 예배당이다.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예배당에서 지역 민요 그룹의 공연이 펼쳐지고 환영의 의미를 담은 빵과 오이 그리고 보드카와 함께 한껏 흥을 돋운다. 러시아의 10루블 지폐에 등장하는 차소브냐 예배당은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 성 니콜라이 호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강변 선착장에 닻을 내린 증기선 성 니콜라이 호는 러시아 근대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몸을 실었던 배. 
   1898년 혁명운동 중 체포된 레닌이 이 배를 타고 유배지로 갔으며, 니콜라이 2세도 1981년 이 배를 타고 예니세이 강을 건넜다. 성 니콜라이 호 안에는 도시의 역사가 담긴 그림과 사진 그리고 당시의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지금은 영원히 멈춰버린 성 니콜라이 호 대신 인근의 유람선을 타고 예니세이 강을 유람할 수 있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