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새해 첫날 남남(南南)갈등을 유발하고 한미동맹을 이간(離間)하는 화전양면(和戰兩面)의 신년사를 내놓았다. 한국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 반면, 미국엔 미 본토 전역이 북한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는 핵단추 ‘협박’을 던진 것이다.

김정은은 다음 달 평창올림픽을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반면 김정은은 미국을 향해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해 “미국의 모험적인 불장난을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을 갖게 됐다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고 위협했다.
 
이는 우리의 주의를 대화 쪽으로 쏠리게 하여 정세 판단을 그르치게 하려는 전형적인 양동(陽動)작전이다. 김정은은 한국이 “외세와의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고 미국의 핵 장비들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걷어치워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지 요구 등으로 보인다.

또한 김정은은 “핵탄두·탄도로켓의 대량생산과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하며 미국 쪽에 핵 무력을 강화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는 평화공세로 미국의 예봉을 피하자는 위장전술이자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국제 공조를 흔들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다.
 
미-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으며,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고 응수했다. 미국은 아직 북이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으며 북핵 폐기에 거꾸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남북대화 재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통해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위해 한국과 회담할 수도 있다”면서 평화적인 메시지에 주목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자세다. 마치 핵 위기의 해법을 찾은 것처럼 들떠서 ‘환영과 호응’의 가속페달을 지나치게 밟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아무 성과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광범위한 회담주제를 잡고 미리 우리 패를 보여주는 저 자세는 안 된다. 이제까지 북한이 우리를 건너뛰고 미국과 대화하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사용하다가 이번엔 그 반대인 ‘통남봉미(通南封美)’ 전술로 선회한 이유를 냉철히 찾아내야 한다.

김정은은 트럼프 행정부의 선제타격에 의한 북핵 시설 제거 위협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가 대세를 이뤄가자 이를 타계할 묘수로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 대북라인을 타깃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투 트랙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선 한미 공조 및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균열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후 평창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정부가 김정은이 추가 도발 중단을 선언하고, 올림픽과 무관한 정치적 요구 조건들을 철회하도록 협상조건을 역(逆)제안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참석하며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듯했으나 결국 추가 도발로 관계 경색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또한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그해 목함지뢰·포격 도발을 일으켰고, 2016년 신년사에선 “누구와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지만 닷새 뒤 4차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은 북의 올림픽 참가여부를 협상 지렛대로 쓰겠다는 속셈이다. 평창 올림픽 참가를 미끼로 한국이 미국에 북의 ‘대변자 역할’을 요구토록 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등 핵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을 벌고,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 공조에 균열을 일으키며, 한미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려는 다목적 책략과 노림수가 숨어 있다.
 
이 같은 북의 의도를 간파한 이상 정부는 “핵과 평화는 병존할 수 없다” “북핵 폐기 없이는 남북 관계에 미래가 없다”는 대원칙 아래 김정은의 한미 연합훈련 취소 등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북핵개발에 자금과 시간을 벌어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유화 정책으로 북핵 완성의 시간을 벌어주는 또 다른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북핵은 올림픽과 동렬에 놓을 수 없다.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문제다. 만약 북의 무리한 정치적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남남(南南) 갈등은 물론이고, 한미 동맹이 파국으로 갈 수 있다. 한미 동맹의 균열은 위험하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창 대표단 파견 제의를 철저히 올림픽 차원에서 접근해 성사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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