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상당 기간 냉각 상태 면하기 어려울 것”

신각수 전 주일대사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정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뒤인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문을 내며 “2015년 한·일 양국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유감스럽지만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며 위안부 합의 파기 또는 수정 의사를 강력 시사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 8분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문재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 및 재협상은 지난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협상 번복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중한 자세를 요하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 외교 총평…“일정한 진전 보였지만 완전한 재정비는 아직”
외교교섭 기록 공개…“우리 외교의 대외 공신력에 문제를 야기한 것”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살펴보면 사실상 합의 폐기 및 재협상 수순이 될 확률이 높다. 일각에서는 오는 10일 청와대에서 예정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이 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확실한 건 문 대통령이 합의 폐기‧재협상을 선언하는 순간 한일관계에는 격랑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일요서울은 위안부 합의 갈등 속 위기의 한일 관계를 긴급 진단하기 위해 신각수 전 주일대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 전 주일대사는 정통 외교관 출신의 동북아 정세 전문가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부 2차관과 1차관을 역임한 뒤 2011년 5월 주일대사에 임명됐다. 다음은 신 전 주일대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정부는 미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총평을 한다면?
=현재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무난한 상태지만 북한 핵 해법과 동아시아 질서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의 과제가 남아 있다.
중국과는 정상회담을 통해 사드 보복을 완화시켰으나 아직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과는 투 트랙 접근법으로 실용적 노선을 취하였으나 최근 위안부태스크포스 보고서 발표 후 일본의 반발로 위기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핵 사태로 인해 급히 출범하였고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를 물려받았다는 어려운 여건을 감안하면 일정한 진전을 보였지만, 우리 외교환경의 완전한 재정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Q. 중국과의 사드 문제는 봉합 단계지만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 문제가 터지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중대 기로에 선 한일 관계, 어떻게 진단하고 전망하나?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파기나 재협상을 선택할 경우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가 재교섭에는 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으며 아베 총리도 “1mm도 움직일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양측의 입장이 선명히 대립되는 가운데 한일 관계는 상당 기간 냉각 상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Q. 정부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 파기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일본은 재협상 불가를 고수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거의 30년에 걸친 한일 과거사 현안으로, 매우 어렵게 교섭하여 얻은 결과가 2015년 12월 28일 합의다. 역사가 오랜 만큼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다.
합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서로 타협을 통해 어렵게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 불리한 것과 일본에 불리한 것이 각각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판단해야 한다.
합의가 이미 상당 부분 이행된 사실과 우리가 주장하던 책임•사죄•배상 3개 항목에서 진전이 있다는 점을 감안, 합의를 존중하되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인 ‘피해자의 마음을 아우르는 조치’를 한일 양국 간의 합의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 방향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본다.
 
Q. 한일위안부합의검토TF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외교기밀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국가 간 신뢰를 깨는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국내 행위와 구별되며 상대방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국가들이 외교문서는 25년에서 30년간 비밀로 보관하고 나중에 해제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2년밖에 되지 않은 외교교섭 기록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의 대외 공신력에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믿을 수 있는 나라’의 평판을 쌓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의 외교 행위로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Q. 위안부 합의 재협상 문제로 인해 일본 내 반일 감정 악화 가능성도 높다. 현재 일본 내 분위기는 어떤가?
=2012년 이래 한일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태에 있다가 2015년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이를 잘 살리지 못하고 2016년 말 부산총영사관 앞 위안부소녀상 설치로 인해 다시 악화된 상태다.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 마찰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합의를 해도 지키지 않는다는 불신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종래 일본은 한국이 과거사 관련 골대를 옮긴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 바, 이러한 인식이 굳어질 우려가 크다. 일본 내 친한 인사나 언론도 불만을 표명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Q. 위안부 문제 때문에 미국과 한국·일본의 대북 공조 대응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도 북핵 위협에는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대북공조 자체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 어느 정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다.
 
Q. 일본은 ‘정상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개헌 추진으로 북한·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비한 전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이 북한 핵무장과 중국의 빠른 국방력 강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일 동맹의 쌍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석 개헌을 하고 전수 방위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재정 적자로 인한 방위비 증액의 한계,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 자원 확보 제약, 개헌 반대 여론 등에 비추어 군사 강국으로 발돋움하기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다. 또한 미일 동맹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객관적 역내 안보상황을 보아가면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Q.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일관계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사 문제는 가해자의 사죄와 반성, 피해자의 관용을 통한 역사 화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후세들에게 교육하여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있다.
한일 간에도 다양한 과거사 문제가 오랜 기간에 걸쳐 해결되어 왔다는 점에서 꾸준히 상호 이해를 넓혀가면서 과거를 딛고 미래를 내다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직접 체험을 하고 과거사를 담은 좋은 소설, 영화, 음악 등을 읽게 되면 과거사를 제대로 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적•문화교류를 강화하고, 중단된 한일역사공동연구를 재개하여 꾸준히 역사 인식의 갭을 줄여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Q. 우리나라에 4강 외교는 상당히 중요하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의 외교 전략 어떻게 가야 할까?
=우리 외교의 기축은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 한미 동맹이다. 북한 핵 문제를 풀고 통일을 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국가는 미국이다. 따라서 우리 외교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주변국인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강화해 가는 덧셈 외교를 해야 한다.
특히 일본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고 아시아에서 단 2개의 OECD회원국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한일 관계는 과거사의 장벽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파트너로서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관계다.
중국과는 거대한 시장으로서의 중요성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에 비추어 전략적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중국몽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주변국에 대한 강압적 외교의 가능성도 있는 만큼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야 하고 과도한 기대감도 금물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신북방정책과 러시아 동방정책의 접점을 잘 찾아 실질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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