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오는 지방선거가 그동안 텃밭으로 여겼던 TK(대구·경북) 수성마저 걱정해야할 처지에 몰렸다. 최근 현지 지역 언론사의 정당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은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역전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경북에서는 민주당에 불과 7% 앞서는 데 그쳤다. 대구·경북 전체로 볼 때는 겨우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을 뿐이다. 이쯤 되면 한국당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결과는 설마 했지만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만일 이 결과가 지방선거에까지 이어진다면 한국당이 설 땅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한국당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여준 한국당의 행태는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겠다며 ‘개혁’을 외쳤지만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 낸 게 없다. 되레 당내 분란만 양산했다.
전국 당협위원장에 대한 당무감사를 한답시고 점수를 매겨 커드라인에 들지 않은 위원장을 탈락시키는 ‘꼼수’를 부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궤멸 위기였던 당 조직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러나 실제는 홍준표 대표의 당 장악 의도였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터다.
게다가 한국당은 탈당했다가 복당한 바른정당 의원들에게 당협위원장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당무감사를 통과한 기존의 당협위원장을 졸지에 물러나게 만들었다. 대선에서 자신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동지들은 자르고 대신 한국당을 배신한 당 후보를 지원했던 자들을 우대하는 비상식적 작태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당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와중에 당 최고의원직과 당협위원장직을 한꺼번에 박탈당한 류여해 전 최고위원과 홍 대표가 펼친 낯 뜨거운 설전은 마지막 남은 보수의 품위마저 손상케 한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이처럼 보수의 도덕적 가치인 도리(道理)와 품격을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린 한국당에 TK 보수가 지지를 철회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한국당이 새해에 야심차게 내세운 ‘신보수주의’ 기치도 그 정체가 불투명하다. 신보수주의는 이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네오콘’이라는 별칭을 받은 끝에 소멸해 가고 있는 개념이다. 홍 대표가 뒤늦게 기존의 신보수주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항변했지만, 그동안 한국당이 펼친 행태는 그나마 홍 대표가 주창하는 ‘억지’ 신보수주의와도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을 두고 홍 대표가 보인 오락가락 행보 역시 TK 민심 이반에 큰 몫을 한 것 같다. 이후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선도한 인사들이 당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 TK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홍 대표의 편협한 리더십은 인재영입 작업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대희, 장제국, 홍정욱 등 보수의 명망가들이 하나같이 지방선거 출마를 해 달라는 홍 대표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에 홍 대표는 전문 직종을 중심으로 후보를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당장의 경쟁력보다 확장성을 보고 영입하겠다”고도 했다. 과연 그런 인물이 있겠는가도 싶고, 설사 있다 해도 누가 한국당의 후보로 나서겠는가도 싶다.
지금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신보수주의’니 ‘개혁’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등을 돌린 안방 민심을 보듬겠다는 겸허한 태도다. 그리고 ‘권력 패러독스’의 함정에 빠졌던 과거에 대한 처절한 자아비판과 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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