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최근 페이스북 라이브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를 통해 "외교잡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이 아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를 평가하면서 문 대통령을 ‘올해의 균형자(The balancing act award)’로 선정했다"고 자랑했다.
 
고 부대변인은 "'더 디플로맷'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을 잡았다'며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경제적 압박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요구에 맞섰다'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이 한미FTA 개정을 요구하고 중국의 사드 관련 경제적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강조하고 FTA 개정 요구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올해의 균형자'란 표현을 선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나름의 해석까지 보탰다.
 
이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처한 한국의 외교 난국을 풍자한 글을 오역했다느니, 자화자찬(自畵自讚)이라느니, 청와대가 ‘오버’했다느니 말들이 많다. 어떤 매체는 문 대통령을 ‘올해의 균형자’로 선정한 잡지 기자에게 확인한 결과 “청와대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왜들 이렇게 달리 생각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음의 해석이 그래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균형자(balancer)라는 단어에 집중하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여타 국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저울대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 국가를 국제관계에서 ‘균형자’라 일컫는다”고. 자연 ‘우리나라가 그런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르게 된다. 이들의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더 디플로맷’이 표현한 ‘balancing act'는 다른 나라 또는 개인 간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행위가 아니라, 외줄 타기 묘기(妙技)처럼 자기가 균형을 잃고 추락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즉, 문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이 엄청나게 가하는 상이한 압력 속에서 제대로 서 있기가 퍽이나 힘 든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 대통령은 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버텨냈다. 그러니 문 대통령이 받은(?) 상은 ’올해의 균형자상‘이 아니라 ’올해의 곡예사상‘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이번 ‘올해의 균형자상’ 사건은 ‘균형자’라는 용어 해석에 대한 시각이 달라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는 종전의 ‘균형자’ 개념을 군사적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 것 같고, 다른 쪽은 종전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다만, ‘균형자’라는 의미가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종전 방식대로 인식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몰라도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는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을 ‘곡예사’에 비유할 수 있는 까닭은 또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한 한국 국민들의 마음도 달래줘야 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복원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마치 줄을 타는 곡예사와 같아 보인다. 그는 또 원전 수주 문제로 불거진 UAE와의 관계 복원을 위해 곡예사처럼 줄을 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줄타기 역시 국민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있다.
 
‘곡예사’라는 표현이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면이 더 있어 보인다. 줄을 끝까지 잘 타면 곡예사는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지 않는가. 또 ‘곡예사’라는 말 속에 줄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설사 도중에 줄에서 떨어져도 관객들은 비난보다는 “다시 해보라”며 더 많은 격려를 해주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더 디플로맷’이 표현한 ‘The balancing act award'는 ’올해의 곡예사상‘으로 번역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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