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당초 정치권은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점쳤다. 친문 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비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항마로 추 대표가 거론됐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친문계의 의중에 추 대표는 없었다. 지난 2016년 추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당 대표에 당선됐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에 추 대표의 시선이 차기 총리 또는 국회의장으로 옮겨갔지만 이 역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내 주류 측에서 추 대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론’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추 대표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갈팡질팡할 게 없는 추미애’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親文 업고 당 대표 당선, ‘盧 탄핵 주도’ 족쇄 풀리나 했는데...
- 조 전 보좌관 등 측근 교체, 새 친위체제 구축해 봤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불출마 의사를 분명히 했다. 추 대표는 지난해 12월 21일 서울시장 후보 하마평에 오른 것에 대해 “국민이 준 정권교체 기회에 충실했고 다행히 성공했다”면서 “지방선거도 성공시켜야 하는 책무에 충실할 것”이라고 당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고 8월 임기를 마칠 의사를 확고히 보였다.
 
‘서울 시장’ 원했던
秋 돌연 ‘불출마’ 왜?
 

추 대표가 ‘불출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데는 지난 2016년과는 달라진 당내 역학구도가 크게 작용했다. 추 대표는 지난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서 친문계의 압도적 지지로 당대표에 당선됐다. 당초 비문인 이종걸 후보를 제외하고 친문인 추미애, 김상곤 후보가 표를 나눌 것으로 예측됐으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끝나고 1년 5개월 여가 지난 지금, 추 대표의 당내 입지는 많이 달라졌다. 친문계는 비문 대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3선 가능성이 커져가는 상황을 전복할 카드가 없음에도 추 대표만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앙금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추 대표가 서울시장을 꿈꿨지만 어쩔 수 없이 ‘불출마’를 선언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물론 우상호 전 원내대표 등을 비롯한 여권 내 신주류 세력이 추 대표를 구심점으로 결집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러기엔 추 대표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서울시장 당선은 곧 대선 후보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서울시장 출신이다. 그러나 정치권에는 ‘서울시장 선거는 유력 정치인의 무덤’이라는 말도 공존한다. 여러 유력 정치인들이 큰 꿈을 가지고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한동안 정치적 ‘혹한기’를 보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찬종 전 의원, 최병렬 전 의원, 김민석 전 의원, 강금실 전 장관, 한명숙 전 총리,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축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서울시장에 불출마 결단을 내린 추 대표가 총리로 시선을 돌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위해 추 대표가 최근 조 전 보좌관 등 측근을 교체해 새로운 친위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이 역시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실정이다. 당내 주류 측이 이번엔 과거 추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음을 이유로 추 대표의 총리직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추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앞장서면서 정치적 동지이자,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부상한 상황이었다. 그런 추 대표가 노 전 대통령과 갈라선 것은 민주당 분당 사태에 반대하며 친노계가 주도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아서다.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초반 3불가론(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돼서는 안 되며,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을 내세워 탄핵을 반대했지만 결국 막판에 입장을 바꿔 탄핵 대열에 합류했다.
 
추 대표는 한 술 더 떠 노 전 대통령 탄핵 표결 이후에는 “국정 불안을 우려했을 뿐 탄핵 사유가 틀려 반대한 게 아니다”라며 “노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으로 만들 정도”라고 독설을 했다.
 
盧 탄핵 ‘삼보일배’로 사죄,
주류 측 ‘앙금’ 풀리나 했는데...
 

이후 추 대표는 수차례 당시 탄핵에 찬성했던 것을 사죄하며 여론과 당내 주류 측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다. 지난 2012년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으며 친노 진영에 한발 다가섰다. 이후 대선에는 패배했지만, 2015년 문재인 전 대표가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 최고위원을 맡아 문 대표를 돕는 데 앞장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전후해 문 대표 흔들기가 극심했던 당시에도 추 대표는 문 대표를 적극 도왔다. 지금은 국민의당으로 옮긴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 사퇴하라”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을 정도였다. 이후에도 문 대표를 흔드는 추가 탈당 행렬이 가속화됐으나 추 대표는 탈당 행렬에 가담하지 않았다.
 
지난해 8·27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밑바닥으로 추락해 사죄드리며 삼보일배도 했다”는 말을 거듭하며 참회록을 썼다. 삼보일배를 한 여파로 무릎 상태가 안 좋아져 운동화를 신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추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친문계의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고,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듯했다. 전대 이후 민주당은 추 대표의 당선을 “노무현 탄핵을 한 정치인을 품는 친문의 포용력을 보여준다”며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추 대표의 ‘노력’과 민주당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당내 주류세력은 여전히 추 대표에 대한 ‘앙금’을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친문계 입장에선 지난 전당대회야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기 전이었고, 마땅한 인물이 없었기에 대안이 필요했지만 지금 쟁쟁한 인사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굳이 ‘앙금’이 있는 추 대표를 밀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추미애 국회의장직 도전설’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친노 좌장’ 이해찬 전 총리와 ‘원조 친노’ 문희상 의원이 하반기 국회의장직 물망에 올라 있다. 추 대표가 이 의원과 문 의원 두 친노계 인사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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