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키호테형’ 정치인 VS 햄릿형 정치인은...
- ‘사오정형 정치인’, 본인이 ‘사오정’인 줄 몰라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유형의 대조적 인간형을 비교하였다. 그가 얘기한 ‘햄릿형 인간’이란 대체적으로 우유부단하고 어떤 일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여 실행력이 약한 유형의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색형(思索型) 인간이라고도 불리는 것을 보면, ‘햄릿형 인간’을 단순히 우유부단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도 하다.
 
‘햄릿형 인간’과 대조적인 인간형은 ‘돈키호테형 인간’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기 나름의 정의감에 충만하지만, 분별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의 유형을 말한다. 그렇지만 ‘돈키호테형 인간’이 확신에 찬 정의감의 소유자라는 것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에, 단순히 공상가나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올바른 판단은 아닌 것 같다.
 
‘햄릿형 인간’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희곡 『햄릿』을 발표한 것이 1600년이고, 스페인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세르반테스가 소설 『돈키호테』를 발표한 것이 1605년이니 아마도 두 유형의 인간은 당시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두 유형의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햄릿형 인간’, 수많은 ‘돈키호테형 인간’이 즐비하다. 다만 그러한 유형이 외재되어 나타나는 강도가 조금씩 다르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유형을 적절하게 조화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유형의 인간형들을 무슨 괴짜형 인간처럼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유형의 인간들은 정치인에게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두 유형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햄릿형 정치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돈키호테형 정치인’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을 것이다. 그 둘은 같은 시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정치적 역정을 보낸 사람들이지만, 그러한 고민을 풀어내는 방법은 달랐다.
 
김대중이 끊임없이 사색하며, 자신에게 질문하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갔다면, 김영삼은 언제나 자신감에 충만했고, 정의의 편을 믿었으며, 나를 믿고 따르라며 주변을 독려했다.
 
결국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름대로의 족적을 남겼다.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기에 호불호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영달의 기준에서 보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둘의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즉,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김대중은 성공한 ‘햄릿형 정치인’이고, 김영삼은 성공한 ‘돈키호테형 정치인’인 것이다.
 
물론 그 둘 이후에도 대한민국에는 많은 ‘햄릿형 정치인’, ‘돈키호테형 정치인’이 나타났다. ‘영원한 민주주의자’라는 고 김근태 전의원, 김근태 전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 ‘87년 체제를 만든 주역’ 이인영 의원, ‘호남의 3대천재’로 불리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 반대의 선봉에서 안철수 대표와 투쟁 중인 천정배 의원 등은 ‘햄릿형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좋겠다.
 
반면, 과거 깨끗한 정치, 새정치의 원조 격인 박찬종 전의원, 여성 정치인의 막말퍼레이드 정수를 보였던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으로부터, 막말 대명사로서의 찬사를 듣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은 ‘돈키호테형 정치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 정치적으로 실패를 했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정치인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햄릿형 정치인’, ‘돈키호테형 정치인’은 개인의 성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새롭게 주목을 끄는 정치인 유형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사오정형 정치인’이다. 허영만 화백의 원작 ‘날아라 슈퍼보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오정은, 가는귀를 먹어서 대부분의 경우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며 이것으로 인해 ‘사오정 개그’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원래 사오정은 몸을 마음대로 늘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사오정이 몸을 늘인 다음에 다시 제대로 줄이지 못해 귀가 덮여 버린 것이다. 청력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사오정은 그러한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이용하여 자기가 제대로 듣고 싶을 때는 스스로 귀를 열어 듣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는 못들은 체 함으로써 상대를 화나게 한다. 이러한 사오정과 같은 캐릭터를 갖춘 정치인을 필자는 ‘사오정형 정치인’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일본인으로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로마시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낸 <로마인 이
야기>천재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명제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녀가 발견해 낸 명제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다.
 
한 선사가 손끝으로 달을 가리키며 달을 보라 했더니, 제자는 선사가 가리킨 달은 보지 않고 선사의 손 끝만을 보고 있었다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아둔함은 시대를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이면서도 아둔한 정치인 유형이 바로 ‘사오정형 정치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사오정형 정치인’은 ‘햄릿형 정치인’이나 ‘돈키호테형 정치인’과 같이 대중화를 이루어 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시민권은 획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진보 온라인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 2015년 10월 31일 19시 16분 13초에 등록된 글, 그리고 대표적인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인 ‘대한민국 박사모’ 2015년 10월 31일 19시 17분에 게시된 글은 같은 내용의 글이지만, 보는 시각은 천양지차다. 대략 같은 시각에 게시된 두 글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TV조선에서 ‘사오정 정치인’에 대해 순위를 매기고 있었고, ‘대한민국 박사모’에 올라와 있는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5위 문재인, 선거에서 지고도 전략적 사오정인 척 / 선거는 지면서 성장한다고..., 4위 김태호, 늘 핵심 오락가락 / 박대통령께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대통령을 궁지로 몰게 하는 행동을, 3위 안철수, 나 홀로 한 박자 늦은 행보 최강자 / 말과 행동이 안 맞는 대선 행보?, 2위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 무식의 극치 박사 맞는지? / 실언에 잇따른 실수, 1위 김정은, 인권유린 행동 저팔계 / 귀가 안 들려 본인 행복하다.”
 
아마도 ‘대한민국 박사모’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은, 안철수, 문재인이 각각 1위, 3위, 5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박근혜 대통령의 팬 카페에 게시되어도 무방했던 내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유머’의 판단은 달랐다. “1위는 누굴까? 내 마음속에 있는 그분일까? 하며 기대 기대 했지만, 정으니라고 하네요. 0순위가 없는 게 아쉽습니다. 깔깔. 개그 채널인 줄”
 
그렇다. ‘사오정형 정치인’은 정작 본인이 ‘사오정형 정치인’ 인 줄 모르고 잘났다고 착각하고 있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생각의 마비에 걸려 있다. 우리 정치사회가 극한 대립과 갈등을 먹고 성장하는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2년 3개월이 지난 현재, ‘사오정형 정치인’은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했을까?
 
2위와 4위를 차지했던 윤진숙과 김태호는 이미 정치적인 의미가 없어 무시한다고 치자. 5위를 차지했던 문재인은 촛불 민심의 힘을 빌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있다. 1위를 차지했던 김정은은 그 사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여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호적수가 되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의 ‘사오정형 정치인’ 랭킹을 정한다면 1위를 내놓지 않을 사람이다.
 
2015년 실질적인 0순위로 주목받았던 박근혜는 그 예측대로 503호의 수의를 입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다. 3위였던 안철수는 1위를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사오정형 정치인’의 백미(白眉)를 향하여 치닫고 있다.
 
이제 냉정해질 때다. 대한민국 정치가 ‘사오정형 정치인’에 의하여 휘둘리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적폐청산’, ‘정치보복’, ‘극중주의’ 등 그들이 만들어 낸 그들만을 위한 정치 행보에 갈기갈기 마음까지 찢기고 있다. 협치와 통합은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나서야 한다. 사오정의 귀를 얼굴의 주름으로부터 꺼내어 우리나라 정치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어야 할 책임은 우리 유권자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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