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여권 주류 친문계의 기류가 심상찮다. 친문계는 그동안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서울 시장 선거에 마땅한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내 서울 시장 후보군들 모두 ‘문재인 마케팅’에 혈안이 됐지만 정작 친문계의 의중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정봉주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의지를 피력하자 계파 내 기류가 급변했다. 친문 강경파에서 정봉주 전 의원이 새로운 비문 공격수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까지 분위기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3선’이 유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대에 육박해 있는 점은 변수다. 문 대통령과 친문계의 후광을 업은 친문 후보가 막판 역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불과 16일간의 ‘바람’으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던 사례와 유사하다. 박 시장의 무난한 당선이 예상됐던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 이상기류가 포착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 오세훈, 오풍(吳風)으로 16일 만에 본선 티켓 땄는데... ‘친문 결집’이 관건
- 정청래 “정봉주 출마 시 불출마”... 친문계와 무슨 얘기 오갔나?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여권의 우세가 점쳐진다. 그만큼 여권에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비롯해 우상호·박영선·전현희·민병두 의원 등 서울 시장 후보군이 넘쳐나고 있다.
 
그동안 여당 주류 세력인 친문계는 이렇다 할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친문계에서 정청래 전 의원이 비문 공격수로 낙점되는 듯한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기류’에 그쳤다. 최근 친문계와 친문 지지자들 가운데 뜻밖의 인물이 거론되면서다.
 
親文 등에 업은 정봉주,
박 시장 정조준 “명분 약해”
 

얼마 전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내비친 원외 인사, 정봉주 전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2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할 생각이 있다”며 “올해 6·13 지방선거 때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서울 노원병이나 송파 보궐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원순 시장과의 경쟁과 관련해선 “박 시장은 3선 도전의 명분이 약하다”며 “서울시장은 행정도 중요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박 시장은 그렇지 못하고 3선 후 대권 도전이 목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봉주 전 의원의 발언은 비문 대표 박 시장의 ‘대항마’를 찾아 왔던 친문계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박 시장의 3선 성공은 문 대통령과 친문계에겐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청와대와 서울시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치권에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문 대통령과 박 시장은 사법시험 동기이며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동지’로 알려져 있으나 지난 대통령 경선 때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특히 경선 당시 박 시장은 “당의 분열을 불러온 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의 대상이자 청산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발언해 일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3선에 성공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거리두기나 차별화로 나아갈 것이라는 이른 예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계가 당초 공격수로써 고려했던 정청래 전 의원이 지난 7일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단언한다. 내가 정봉주와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정봉주 전 의원의 출마 시 자신은 불출마하겠다고 잘라 말하자 일각에선 정봉주 전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 그리고 친문계 사이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한 얘기가 오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 일각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경선을 떠올린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은 맹형규·홍준표 양자 대결 구도가 점쳐졌다. 그런데 경선을 16일 앞두고 출마 선언을 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오 전 시장이 몰고 온 ‘오풍’이 불과 16일 만에 대 역전극을 연출한 것이다.
 
이 같은 ‘오풍’은 당내 소장파 그룹의 적극적 지지가 없었다면 ‘미풍’에 그쳤을 공산이 크다. 당시 소장파의 결집력은 2006년에만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를 만들어냈다. 2006년 1월 12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재오 대표와 김무성 의원이 맞대결했을 때 소장파는 이 의원을 뒷받침해 원내대표로 만들었다. 같은 달 22일 경기지사 경선에 나서려 했던 남경필 지사를 설득, 출마를 포기시키고 김문수 전 지사를 지지하도록 했던 것도 소장파였다. 김 전 지사는 이에 힘입어 같은 해에 전재희 전 장관과 김영선 전 의원을 누르고 경기지사 후보에 당선됐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에 육박한다. 이는 친문계의 당내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막강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친문계가 지난 민주당 8·27 전대에서와 같은 결집력을 보여준다면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3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문 vs 비문 구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후보들

 
한편 친문계가 정봉주 전 의원을 본격 지원하게 되면 ‘문재인 마케팅’에 혈안이 됐던 나머지 여당 후보군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한다. 박영선·우상호·전현희·민병두 의원 등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은 모두 ‘문재인 마케팅’에 혈안이 돼 있었다. 비문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은 자신을 친문 후보로, 이미 친문으로 불렸던 후보는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진문’으로 자신을 규정했다.
 
70%에 육박하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등에 업는다면 비문 대표 선수인 박 시장과도 붙어볼 만하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작 친문계의 의중은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 정봉주 전 의원을 향했고 이렇게 되면 이들이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박 시장에 맞서 경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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