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그야말로 혼돈이다. 실물이냐 허상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규제 대상인지 폐쇄 대상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심지어 ‘4차 산업의 중심’이라는 분석과 ‘범죄 행위’라는 정반대의 주장이 충돌한다. 가상화폐 얘기다. 투자와 광기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현 상황이야 어찌됐든, 가상화폐와 관련된 범죄는 늘고 있다. 자금세탁, 시세조종 등의 대형범죄 우려도 제기된다. 마침내 정부가 나서 내달리는 화폐 시장에 제동을 걸었지만, 급제동 특유의 날선 마찰음이 ‘무언가 잘못됐음’을 암시하는 모양새다.
 
최근 이 같은 가상화폐를 노리거나, 가상화폐를 활용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이스트소프트의 개인정보 수천만건 유출로 파문을 일으킨 일당의 총책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해당 개인정보로 가상화폐 거래소에 접속해 비트코인을 가로채는 등 2차 범죄까지 저질렀다.
 
조모(27·조선족)씨는 지난해 2~9월 이스트소프트의 알툴즈 회원 약 16만명의 계정에 불법 접속해 각 회원이 등록한 인터넷 웹사이트 아이디·비밀번호 2500만 건을 유출한 뒤, 그 중 14만명의 아이디·비밀번호 약 43만개를 볼모로 “5억 원을 주지 않으면 유출된 정보를 언론사 등에 넘기겠다”며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지난해 9월 피해업체에서 유출한 아이디·비밀번호 43만건과 동영상 파일, 보도자료 등을 제시하며 총 67차례에 걸쳐 현금 5억 원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요구하며 협박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피해자의 아이디로 접속해 휴대전화 문자와 OTP 등 본인인증을 우회하며 피해자 2명으로부터 지난해 9월 당시 시세로 현금 800만 원에 해당하는 2.1 비트코인을 훔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빅코인(BNA코인 또는 BOC코인)이라는 이름의 허위 가상화폐를 만들어 100억 원대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인 40대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수원지법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다단계업체 사업자 김모(48)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서 김 씨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서울 강남구에 ‘빅코인코리아’라는 사업체를 차려놓고 “본인 명의로 투자하면 일정금액을 빅코인이라는 가상화폐로 수당을 지급해주겠다. 이 가상화폐는 25배까지 가치가 상승한다”는 거짓 정보로 투자자를 모집해 다단계 방식으로 145억1605만 여 원을 수신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씨가 투자자들에게 홍보한 빅코인은 현금화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김 씨 등이 홍보한 쇼핑몰에서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김 씨 등이 주장한 화폐가치 상승도 전산 상의 수치를 조작한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잇따르는 범죄뿐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범죄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시세조종 역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 최근 거래소 사이트의 ‘서버 지연 사태’로 시세조종 의혹이 일기도 했다.
 
홈페이지가 마비된 후 비트코인의 가격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부러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뒤 현금화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또 다른 범죄는 자금세탁이다. 가상통화 거래는 익명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이것을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가상화폐 가상계좌를 운용 중인 6개 은행을 상대로 가상계좌 합동검사를 벌였다. 최 위원장은 “가상통화 거래는 익명성과 비대면성으로 인해 범죄·불법 자금 은닉 등 자금세탁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들이 가상통화 취급업소(거래소)와의 거래에서 위험도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조치를 취했는지 중점적으로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와 함께 비트코인 범죄수익의 추징·몰수를 위한 대응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법원이 범죄수익인 비트코인의 몰수를 기각한 판결에 비춰 일선 검찰청 수사를 지원하기 위한 대응방안 및 매뉴얼을 논의 중이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9월 음란 사이트를 불법으로 운영하고 이용료 등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운영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검찰이 구형한 216 비트코인(기소 당시 약 5억 원 상당)의 몰수와 그 가치에 상응하는 돈의 추징을 기각했다.
 
이런 가운데 가상화폐 규제를 놓고 정부 부처가 엇박자를 내며 혼란을 주고 있다. 이 틈을 탄 또 다른 범죄도 우려된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안을 내는 것에 부처 간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가상화폐 시장이 요동쳤고 투자자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그러자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법무부는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을 준비해왔으며 추후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다시 기존 강경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번 가상화폐 논란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관심이 쏠린다. 거래소 폐지 또는 규제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이란 관측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폐쇄와 관련, “아직 조금 더 부처간에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거리를 둔 상태다.
 
김 부총리는 “합리적 수준의 바람직한 규제를 마련하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블록체인 문제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의 하나라는 사람도 있고 산업, 보안, 물류와 같은 쪽에 연관성이 많다”며 “블록체인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봐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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