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맥락 고려할 때 고육지책인 측면
- 변화한 시민 정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최근 문재인 정부가 겪은 논란들은 이전의 논란들과 결이 달랐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논란, 어린이집 및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금지 논란, 그리고 평창 올림픽 단일팀 및 한반도기 논란이다. 제각각의 문제들로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열혈 지지층에 가까웠던 20대, 30대, 40대에게서 반발이 터져 나온 논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평창 올림픽 단일팀 및 한반도기 논란을 따져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맥락이 스며들어 있어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정부에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는 논란이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들이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정부 취임 직후부터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만일 남북 단일팀을 만든다면 아이스하키 팀이 그 대상으로 선택되기에 적절했다. 아이스하키 경기는 동계올림픽의 마라톤으로 여겨지는 상징적 위상이 있고, 2006년까지는 개최국에게 자동출전권이 있었다.
 
문 정부 입장 생각할 때 이해되지만...
 
뒤집어보면 2010년부터는 자동출전권이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팀은 실력으로만 따지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것을 국가가 어떻게든 스포츠외교를 통해 조직위와 연맹 측을 설득하고 막대한 지원을 통해 올림픽 때까지 경기력을 끌어 올린다는 전제 하에 출전권을 따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실력주의에 반하고 국가가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마냥 비판하기는 어려운 맥락이다.
 
또한 올림픽조직위 측의 입장도 있다.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 위기 고조로 인해 각국 연맹이나 국가 단위 불참 선언을 하는 등 매우 어려운 처지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전에 UN 연설에서도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 선언했는데, 현재의 안보위기 국면과 나락에 빠진 평창을 동시에 구할 방법은 사실상 그것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북한의 올림픽 참석에 매달리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조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부가 뚜벅뚜벅 노력하여 성과를 내기 직전인 부분이다.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하는 모습은 어떠한가. 물론 젊은 세대의 경우 ‘뭐 하러 한반도기 들고 동시 입장해야 하는가. 저들은 인공기 들고 따로 입장하라고 하고 우리도 태극기 들고 입장하자’는 말도 한다. 하지만 60세 이상 연령층에 주로 분포한 안보 보수층의 시선에서 볼 때엔 남한에서 인공기가 펄럭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을 남한 공산화의 전조라고 볼 것이다. 합리적인 우려 여하를 떠나서 그러한 사회적 갈등을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다.
 
물론 한반도기 동시 입장만 보고도 남한 공산화의 전조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경우 평창에 태극기가 펄럭이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 왜곡일 뿐이라 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태극기를 TV에서 본 이들은 그런 말에 쉬이 현혹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기도 인공기도 안 된다면 사실상 북한더러 오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남북한 UN 동시 가입을 성사시킨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탓해야 한다.
 
그러나 이 논란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수하거나 간과한 부분이 없지 않다. 먼저, 아이스하키팀이 단일팀의 대상으로 적합했다면 그간에 선수단에 대해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로 양해와 설득을 했어야 했다. 단일팀 결성 과정에서 감독과 선수단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스하키의 특성상 북한 선수 몇이 엔트리에 낀다고 남한 선수 몇이 출전을 못하게 되지는 않으며, 출전 시간이 다소 줄어들 뿐이며, 그나마 엔트리 확장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서도 일 년, 아니 몇 달을 함께 연습했다면 모를까 대회 직전 갑자기 단일팀 구성이 통보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평화 구현을 올림픽 정신이라고 포장하기에는 심하게 스포츠맨십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상적 민족주의’ 시효 지나 냉철하게 직시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그 주변 인사들이 본인들의 감수성과 변화된 시민의 감수성의 차이를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남북관계의 미래에 관한 최대 의견은 평화통일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자에 그것은 극적으로 최소 의견이 되었다. 그간 통일은 필요없거나, 재앙이 될 수 있단 의견이 최대 의견이 됐다. 평화통일론자는 북진통일이나 멸공통일을 원하는 이들에도 못 미치는 소수 정파가 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의 상황과 전혀 다른 것이 그것이다. 2010년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이후 줄곧 관계도 안 좋았다. 게다가 최근까지 핵미사일 도발이 이어져 왔다. 어제까지 죽이네 살리네 하던 이가 다만 친척이라는 이유로 명절날 차례상에 와서 화기애애하게 앉아 있는 것은 사람들의 소박한 인심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외교는 그러한 소박한 인심을 떠나서 작동해야 하지만 감정의 결도 고려할 필요는 있다. 말하자면 한반도기를 통한 동시 입장 정도까지만 진행하고 단일팀 구성은 하지 않는 선택지가 더 나았을 거라는 얘기다.
 
이미 이루어진 합의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지난 이십 년간 극적으로 변화된 감수성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전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추구하는 것까지를 용인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한민족이니 북을 관용하고 평화통일을 무조건 추구하려는 이들로 여겨길 경우, 보수파들의 ‘종북’ 공세까지는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청년층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감상적 민족주의의 시효가 지났음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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