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분명히 드러낸 편향적 인사에 위기감 느끼던 차 송두율 교수 문제 터지자 자연스레 한 목소리 내게 된것”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보여주는 정치권의 이념공방이 우리사회 전체의 이념갈등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DJ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수세에 몰렸던 보수세력들이 송교수 문제가 터지면서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재의 이념공방의 원인은 송교수 문제가 촉매제가 됐지만, 그 동안 노 정권이 취임초기부터 코드정치와 인사문제의 편향성에서부터 잠재되어 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송두율 교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의 이념공방 배경과 숨겨진 노림수를 분석했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으로 촉발된 이념공방이 정치권의 이념공방으로 이어지며 색깔론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송교수의 입국을 둘러싸고 청와대 고위층과 국정원이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기획입국설’, ‘입국 배후설’등이 난무하며 그 파장이 정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송교수 문제가 야기한 이념공방은 이미 참여정부 출범부터 노선이 선명한 인사와 노 대통령과의 코드를 중시한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노 정부는 386 운동권 출신을 대거 등용해 청와대 참모진으로 포진시켰고, 각료인선에서도 이른바 파격인사를 통해 김두관 전행자부 장관, 검찰의 서열을 파괴한 민변출신의 강금실 장관 등 진보적인 인사들이 대거 등용했다”며 “이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던 노 정부가 출발부터 이념적인 선이 분명한 인물을 발탁해 결과적으로 보수세력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고 덧붙였다.

노 정부가 개혁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386 세대를 대거 등용한 이른바 ‘코드정치’가 결과적으로 현재의 이념공방으로 이어지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는 것.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노 정권의 이념적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국정원 인사였다”면서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갈라서기 전인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입장이 많았던 고영구 변호사와 서동만 교수를 국정원장과 기조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노 정부 스스로가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이념적 선을 너무 분명하게 한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노 정부가 민변출신과 진보적인 학자 등 이른바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며 개혁을 시도했던 것이 오히려 정권이 내세웠던 통합정치보다 개혁그룹만을 끌어안고 가는 것처럼 비쳐졌다는 설명.심지어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청와대에 입성한 386출신들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부추겨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정치권의 이념공방은 민주당이 분당사태를 맞아 통합신당이 탄생하면서 정치권이 각자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하면서 조장된 측면도 있다. 새로운 4당체제로 가면서 한나라당은 보다 분명한 보수노선을 걷게 됐고,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중도노선, 통합신당은 개혁노선을 걷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현재의 이념공방은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에 의해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는 노 정부의 ‘코드정치’에서 이념공방이 시작되었다기보다 송 교수 파문을 정치권이 내년 총선과 향후 정국주도권 등 나름의 계산을 하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 실제 한나라당은 최근의 이념공방이 진행되며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5·6공 인사 용퇴론’, ‘세대교체론’등 한나라당 내부의 갈등조짐은 송교수 파문이 일면서 일거에 잠재워졌다.특히 당내 개혁세력으로부터 대표적인 5·6공 인사중의 한 명으로 꼽히며 입지가 위축됐던 정형근 의원은 송교수 사태와 관련, 이념공방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정 의원은 국정원 수사기록 유출 혐의를 받으면서도 “송씨는 사실상 북한 노동당 지하조직의 대남공작원, 즉 간첩”이라며 “수사당국은 송씨의 간첩행위 및 배후 등을 철저히 규명, 간첩죄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당이 이념공세를 강화하자 소장파들은 난감한 눈치다. 남경필 의원 등 소장파들은 “송 교수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해야 하지만, 공세방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정의원이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현정권의 실정과 함께 이념문제를 보다 분명히 하고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잡아가는 기회로 삼으려는 당 지도부의 입김이 강해 이들의 의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이 정략적으로 송 교수 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며 “송 교수 과거행적에 대한 정확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반면 민주당과 통합신당은 송교수 문제가 자칫 색깔론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눈치다. 민주당은 송 교수 문제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국정원과 검찰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념공방으로 이어지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자칫 국민들의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해 내년 총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 민주당 한 당직자는 “현정부가 이른바 코드가 맞는 인사들만 등용해 결과적으로 보수세력을 껴안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유발된 측면도 있지만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우려했다.

통합신당 관계자도 “송 교수에 대한 검찰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폭로하는 행위는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송 교수 문제가 정치권의 이념공방으로 비화되자 시민단체들은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이 부활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노조 등 13개 시민사회 단체는 지난 8일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KBS에 대한 색깔공세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 50여년 전 ‘미국 정부 안에 빨갱이가 있다’는 한마디로 미국을 황폐하게 만든 매카시 상원의원이 한나라당 의원으로 환생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송두율 교수 사건을 계기로 한국방송에 대한 무차별적인 색깔공세를 벌이는 것은 내년 총선을 대비해 한국방송을 흔들어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정략적인 목표에 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이번 사태는 YS정부 출범 당시 한완상씨와 김정남씨, DJ시절의 최장집씨 사례에서 보듯 정권 초기마다 되풀이되는 보수진영의 색깔공세를 이 사회가 언제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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