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등 중심 ‘시민사회 1000인 선언’ 본격 총선출마 검토참여연대·경실련등은 반대입장… “순수성 훼손 우려”2000년 4월3일 서울 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총선시민연대의 4·13총선낙선대상자 발표에서 일제히 낙선의 상징인 낙선레드카드를 들고 있다. ‘송두율 교수’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이념논쟁에 휩싸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시민단체’들이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부 단체에서는 내년 총선을 겨냥, 새로운 형태의 ‘시민정당’ 창당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찬·반 양론’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개혁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은 “기존 정치권으로는 정치개혁이 어려운 만큼 정치세력화는 당연하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성향의 단체에서는 “시민단체 본래의 취지를 지켜야 한다”며 ‘정치세력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내년 총선 대응 방식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지난 16대 총선에서의 낙천·낙선운동 등 선거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단체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내년 총선에서도 ‘정치 개혁’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독자적인‘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내년 총선 대응 방식에서 뚜렷한 분화 양상을 띠고 있다. 선거 및 정치 제도의 개선, 낙천·낙선 운동을 통한 인적청산에 초점을 맞춘 ‘전통그룹’과 국회로의 직접 진출을 목표로 한 ‘정치 세력화 그룹’으로 나눠진다. 이중 최근 국회로의 진출을 목표한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 정치권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들의 활동 여부에 따라 기존 정치구도의 일대 변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8일, 시민단체·학계·법조계·종교계 인사 1,013명이 서명한 가운데,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이 구성됐다. 그리고 이들 서명인사들은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위한 기획단’까지 띄웠다. 이들은 “정치개혁은 정치권에 의해 좌절됐고, 부패·지역주의·패거리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며 “시민사회야말로 부패와 지역주의에 물든 한국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동안 시민단체의 일부 명망가들이 정치권에 입성하거나 낙천·낙선운동을 벌이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단에는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오경숙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이학영 YMCA대표, 정대화 상지대 교수 등 15명이 대표로 구성됐다. 또 박영숙 전의원, 최병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등이 ‘1000인 선언’에 서명했다. 이들 기획단 대표와 서명 인사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이달 말까지 전국을 돌며 학술 토론회 등을 통해 국민여론을 수렴한 뒤 진로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정당화를 추진할 경우, 기존 정치인을 완전히 배제한 채 사회 명망가와 전문가 등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인품을 인정받는 명망가 ▲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전문가 ▲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 등 세그룹으로 나눠 100여명을 인선, 총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최 대표의 출마 여부가 관심거리. 최 대표는“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세력화에는 찬성하지만, 나 자신의 거취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총선 출마를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이외에도 시민사회단체 몇몇 간부들의 이름이 총선 출마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른 조성우 민화협 상임의장도 서울 종로에서 출마할 것이란 얘기가 돈다. 개혁신당추진위 공동대표인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의 고은광순 대표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대표적인 여성계 인사로 서울 서초갑 출마를 저울질 중이다.이밖에 동아대 총장을 지낸 이태일씨가 부산 서구에 출마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지난 85년 미 문화원 점거농성의 주역인 함운경 군산미래발전연구소장이 전북 군산에서, 정개협 사무처장 출신의 김석수 김포시민사회연구소장이 경기 김포 등에서 출마를 겨냥하고 있다.한편,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이번 정치세력화에 동참하지 않았다. ‘정치 직접참여는 시민단체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참여 연대의 한 관계자는 “총선에 출마할 경우, 이들 인사들은 단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이다”며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 총선 등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시민단체 내부의 목소리”라고 밝혔다.

◈인터뷰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국장


“낙천·낙선운동 계속할 것”꾸준히‘정치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참여연대의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을 통해,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 ‘정치개혁’은 어떻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쓰는 구태의연한 현정당구조의 틀은 깨져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무능한 정치인에 대한 인적청산, 세대교체 등 정치적 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 내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있는데.▲ 정치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명망가들이 현정치권으로는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 참여연대의 입장은.▲ 권력감시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입장. 정치세력화 논의 자체는 가능하지만 실제적인 정치참여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 내년 총선전까지 정치제도개혁에 대한 국민여론 형성 등 입체적인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 내년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은. ▲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도 낙천·낙선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다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의 이념논쟁에 대해서는.▲ 시대 착오적으로, 이런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송두율 교수에 대해 학자로서 한국사회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황장엽씨도 포용하지 않았는가. 색깔 논쟁은 특정정파의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인터뷰“바른사회…” 조중근 사무처장

“시민단체 정치진입 안돼”중도보수 성향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의 조중근 사무처장을 통해, ‘시민단체들의 정치세력화’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 내년 총선에서 정치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시민단체들이 총선 출마자들의 정책이나 제안, 공약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 국민들에게 알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다면 자연히 정치개혁도 이뤄질 것이다.

- 일부 시민단체에서 ‘정치 세력화’를 꾀하고 있는데.▲ 시민단체는 정치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취지로 설립된 것. 이에 따라 본래의 취지와 상반된 활동은 해선 안된다. 정치판 도약으로 시민단체를 이용해선 안될 것이다.

- 내년 총선,‘바른사회…’의 입장은.▲ 선거 자체가 공명정대하게 이뤄지는가를 감시하고, 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 낙천·낙선운동은.▲ 법원에서 부정적으로 판단을 내린 만큼, 내년 총선에서 이런 활동은 중단돼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법적인 테두리에서 정당하게 감시활동을 펴야 한다.

- 이념 논쟁에 대해서는.▲ 송두율 교수 문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몇몇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념논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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