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23명 희생… 화성시, 추모 공간 조성키로
회자되는 ‘안전 관리’… 공무원 비리, 참사 근원적 책임

 
“내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6살짜리 막내딸을 수련회에 보낸 이모(53·당시 35세)씨는 “아이들이 간 곳에 불이 났대요. 형부! 어쩌면 좋아요”라는 처제의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곧장 텔레비전을 켜보니 ‘화성 씨랜드 참사’ 소식으로 뉴스가 도배됐다.
 
사망자 명단에는 딸의 이름인 ‘이○○’도 나왔다. 이 씨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었다고 한다. 서울 송파구에서 화재 현장인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으로 차를 몰고 부리나케 달렸으나, 지금처럼 길도 좋지 않아 2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건물이 새까맣게 타버린 뒤였다.
 
이 씨는 “1층 콘크리트, 2∼3층은 컨테이너로 된 가건물이 모두 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며 “내 자식이 죽었다는 생각에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비슷한 시간 부천에 사는 김모(58·당시 40세)씨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현장을 헤집고 있었다. 같은 유치원 소속 아이들은 모두 생존했다는데, 6살짜리 딸만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김 씨는 “우리 아이가 없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느냐”며 “철골 구조물을 하나씩 헤집으면서 혹시나 아이가 있을까 찾았지만 허사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갔더니 ‘시신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하다’며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해서 아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며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울먹였다. 씨랜드 참사가 난 지 꼭 18년이 된 지난해 6월 30일 유족들이 화재 현장을 다시 찾았다.
 
씨랜드 참사는 청소년 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불이 나 2개 유치원 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23명이 숨진 대형 참사다.
 
수련원 인허가 과정에서 화성군 공무원들의 비위 사실이 드러나고, 6살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 씨가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을 성토하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뉴질랜드에 이민을 떠나 등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화성시는 이날 씨랜드 현장 인근 서신면 궁평리 솔밭에서 ‘씨랜드 화재 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앞서 유족들은 참사 후인 2000년 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했으며, 서울시는 송파구 마천동에 어린이안전체험관을 건립했다.
 
씨랜드 참사 추모제는 매년 이곳에서 개최됐으나, 2016년 17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채인석 화성시장이 “내년에는 화성시에서 추모제를 열고 싶다”고 요청하고 유족들이 이를 수용하면서 처음으로 화성시에서 추모제가 열리게 됐다.
 
추모제에는 유족 50여 명을 비롯해 내빈과 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30대 젊은 아빠, 엄마였던 유족들은 이제 흰머리가 성성한 50대 중년이 됐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아이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테지만, 유족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대여섯 살짜리 어여쁜 아들·딸로 남아있다.
 
긴 고통의 시간,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아픔에 몸서리쳤던 유족들은 희생된 19명 아이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으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씨랜드 참사 이후에도 경주 리조트 사고, 세월호 참사 등 시기와 장소만 달랐을 뿐 똑같은 사건이 잇따랐다”며 “참사가 났음에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세력이 있어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기득권을 정리하고, 공평하고 상식적인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어 유족들과 함께 씨랜드 부지로 이동,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공간을 포함한 ‘궁평 종합 관광지 조성사업’ 계획을 알렸다.
 
화성시는 시비 497억원을 투입해 씨랜드 부지를 사들여 희생자 추모공간(330㎡)을 만들고, 인근 궁평리 해송지대 15만㎡에 수련원, 숲속놀이터, 캠핑장을 만드는 사업을 2019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씨랜드 화재참사는 청소년 시설임을 내세워 불법(不法)을 일삼은 수련원과 이를 묵인한 부패한 공무원들의 합작품이었다. 당시 김일수(金日秀) 화성군수를 비롯해 화성군청 간부 공무원들은 씨랜드 대표 박재천(朴在天)씨로부터 청탁을 받고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담당 공무원들은 현장을 철저히 무시한 채 불법 투성이였던 씨랜드를 허가했다.
 
공무원들은 씨랜드가 지난 1997년 5월 수련원내 무허가 건물을 증축하고 그 위에 컨테이너를 얹어 3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만들었지만 ‘내력구조 및 내화구조로 된 철골구조물’로 건축허가를 내줬다. 또 씨랜드측이 낸 청소년수련시설 설치허가신청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건물이 이미 무단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여러 차례 적발했지만 모두 묵인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그린건설 대표 조정민씨에게 1천400만 원을 주고 건설면허를 빌리기도 했다. 지난 97년 6월과 98년 9월 화성군이 씨랜드의 무허가 영업행위를 신고받고 경찰에 고발했지만 벌금 200만-300만원을 낸 씨랜드의 불법영업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씨랜드가 막무가내식 불법, 탈법 영업을 계속하는데도 김일수 군수와 화성군청 간부들은 오히려 씨랜드 측을 두둔하고 나섰고 특히 사회복지과장은 건축물 위법사항 등을 이유로 운영허가를 내주지 않던 담당 계장에게 “네가 군수냐”고 윽박지르며 허가를 독촉했다.
 
씨랜드 소방시설 점검을 담당한 소방공무원들도 형식적인 점검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소화기, 비상벨 작동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양호’, ‘합격’ 판정을 남발했다. 씨랜드는 국유지 70여평 불법매립, 논 6백60여평 불법 사용,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전기시설 개선명령 무시 등 불법과 편법행위로 일관했지만 화성군의 제재는 거의 없었다.
 
화성군은 심지어 씨랜드의 불법건축과 불법 영업을 묵인한 사실이 경기도 감사에서 적발돼 관련 공무원 6명이 감봉 등 무더기 징계를 받았지만, 씨랜드 컨테이너 건물은 4개월만에 사용허가를 받았다.
 
불법영업과 건축을 묵인하는 특혜를 주며 김 군수와 공무원들이 받은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특히 김 군수의 경우 외부인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씨랜드 양성화를 지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업자-공무원 사이의 검은고리를 토대로 문을 연 컨테이너 수련원. 이렇게 만들어진 건물이 화재 등 재난에 안전할 리 없었다.
 
공무원들의 묵인 하에 컨테이너와 합성재로 만들어진 건물은 조그만 모기향 불에도 순식간에 타올랐고 좁은 소방도로와 비상통로, 허술한 소방시설은 23명의 유치원생과 선생님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사단법인 도시컨텐츠연구소 황춘자 대표(행정학 박사)는 “잘못된 소방시설기준과 행정당국의 형식적인 점검이 빚은 사고였다”며 “대형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건축허가와 감리제도의 개선과 소방검사의 강화 등 제도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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