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폐쇄로 얼룩진 트럼프 취임 1주년

트럼프, 불법체류 젊은이 보호 행정명령을 무력화
한국인 수천 명 포함 70만 명이 강제출국될 수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지난 20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었다. 이날 미국 연방정부가 일시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한 공화·민주 양당이 긴급 합의해 사흘 만에 사태가 해결되기는 했지만 트럼프로서는 경사스러운 날 스타일을 구긴 셈이 됐다. 이날 미국 곳곳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백악관과 의회가 정부지출 법안을 놓고 타협에 도달하지 못함에 따라 이 날을 기해 최대 80만 명의 연방 공무원이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만 필수 요원들과 군인들은 계속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해외 주둔 미군은 21일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플레이오프를 TV로 시청할 수 없었다. 미군 방송이 예산 문제로 폐쇄됐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열려고 했던 취임 1주년 자축 만찬을 취소했다. 트럼프는 별장 행을 그만두는 대신 백악관 주변에서 반(反)트럼프 데모대가 트럼프 반대 구호를 외쳐대는 가운데 백악관에 틀어박혀 분노 어린 트윗을 연속해서 날렸다고 외신은 전했다. 트럼프는 상원에서 정부지출 법안이 민주당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것을 놓고 민주당이 미국인보다 이민자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드리머(꿈꾸는 사람)’로 알려진 젊은 불법체류자들의 미래를 둘러싼 타협에서 발을 뺐다며 트럼프를 나무랐다. 민주당은 2013년 10월 이래 처음인 이번 정부 폐쇄가 한 정당이 입법·사법·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발생한 최초 사례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정당’은 집권당인 공화당을 가리킨다. 공화당은 연방 상하원과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으며, 사법부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도 공화당과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진 보수파 대법관이 우세하다.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지난해 5월 정부 폐쇄가 국가에 좋을 것이라고 말한 트윗을 언급했다. 펠로시는 “대통령 님, 취임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귀하의 소원이 성취됐네요. 귀하가 정부폐쇄를 따냈군요. 정부 폐쇄는 순전히 귀하의 것입니다”라고 빈정거렸다. 공화당 소속의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하원 연설에서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전혀 상관없는 어떤 것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우리가 들어주지 않으면 정부 자금 조달을 거부한다. 그들은 이민을 놓고 거래를 원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은 정부 재개(再開)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1%가 정부 폐쇄를 놓고 민주당을 탓했으며, 26%는 공화당에, 21%는 트럼프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드리머’를 보호하는 것에 대해 광범한 지지가 있었지만 응답자의 다수는 정부폐쇄를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폐쇄라는 중대 사태를 초래한 ‘드리머’ 문제란 무엇인가. ‘드리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2년 발효된 ‘유년 도착자에 대한 조처 유예(DACA·다카)’ 프로그램의 적용 대상자를 가리킨다. 다카는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16세 이전에 미국에 들어온 청년들이 31세까지는 걱정 없이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추방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이다. 다카로 시민권을 받을 수는 없지만 2년마다 노동허가증을 갱신받아 일할 수 있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드리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여 처음 서명했고 행정명령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계속 연장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9월 5일 다카 프로그램 공식 폐지 입장을 밝히고 오는 3월 5일까지 6개월 유예기간 동안 의회에서 이민 관련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 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야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제프 세션스 미 법무장관은 다카 폐지 발표 기자회견에서 “다카 프로그램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해 “청년들의 꿈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 이민국(USCIS)에 따르면 2017년 10월 기준 다카 수혜자는 69만 명에 이르며, 그중 한국인은 7310명으로 멕시코,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5개국에 이어 6번째로 많다. 드리머가 많이 사는 곳은 캘리포니아·텍사스·플로리다·뉴욕 주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다카에 따른 신규 신청은 접수되지 않는다. 현재 다카를 적용받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법적 지위 및 여타 다카 관련 허용 사항들, 이를테면 노동을 하고 대학에 다니는 것 같은 행위는 2018년 3월을 기해 만료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2020년 3월이면 모든 드리머가 그들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드리머의 지위가 소멸되면 해당자들은 추방되어 많은 경우 연고가 전혀 없는 곳으로 송환될 수 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할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카 폐지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실력 행사로 인해 연방정부 폐쇄 사태까지 벌어진 가운데 이에 앞서 지난 1월 9일 미국 연방법원이 다카 폐지에 제동을 걸었다. 이날 윌리엄 알서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 지방법원 판사는 다카 프로그램을 회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49쪽에 이르는 판결문에 따르면, 알서프 판사는 “(정부가 폐지를 밝힌) 2017년 9월 5일 다카 프로그램은 미 전역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철회하기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다카 프로그램이 불법적이라는 법무부의 시각은 결함이 있는 법적 전제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다카 폐지 결정 이후 캘리포니아주, 미네소타주 등이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이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 주는 젊은 이민자가 주에 이득을 준다고 본다. 알서프 판사는 그러나 기존에 다카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지 못했던 불법 체류자들까지 새롭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상급 법원의 판결이 달라지지 않는 한 기존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체류 기한 연장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정부는 해당 프로그램이 다시 재개됐다는 내용의 합리적인 공고를 게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다카 폐지와 관련해 양보의 여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는 불법체류 부모를 따라 아주 어릴 적 미국으로 이주한 청년들에게 공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카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트럼프 정부는 오는 3월 5일 이전 법적 지위가 만료되는 다카 수혜자들이 법적 지위를 갱신하는 것을 허용했다. 미국의 정부 폐쇄는 다카의 행로와 연계돼 그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