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 약소국’에서 급부상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2위, 항간에 떠도는 말로 ‘축구의 변방’이라 불리는 아시아에서조차 변방 중의 변방. 이것이 그동안 베트남 축구의 현주소였다. 그러나 2018년 1월 혜성같이 등장해 베트남 축구를 급부상시킨 인물이 있다. 바로 박항서 감독이다. 베트남은 ‘박항서 마법’을 통해 아시아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일요서울은 ‘베트남 체육대통령’, ‘베트남 히딩크’로 불리는 박 감독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AFC 주관 최초 동남아 결승···‘베트남 히딩크’ 파워
준우승 차지했으나 열광의 도가니···향후 행보 주목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이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지난달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대회 결승에서 연장 후반 종료 1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내줘 아쉬운 1-2 패배를 당했다.

8강부터 준결승, 결승까지 3경기 연속으로 연장 120분 풀타임을 뛴 베트남 선수들은 패배를 직감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결승골에 크게 실망했다. 원정 응원을 온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베트남 축구는 새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이 많다. 체력과 승부욕, 끈질김 등으로 더 이상 변방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동남아시아 국가가 AFC 주관 대륙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축구 전체로 보면 쇼킹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아시아 축구에서는 중동 혹은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이 급부상한 중심에는 박 감독이 있었다. 이번 대회 내내 베트남 전역은 ‘박항서 축구’로 들썩였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열광한 한국과 닮은 모습이다.

수도 하노이를 비롯해 베트남 전역이 감격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광장이나 운동장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응원을 펼쳤으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은 붉은 물결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文 대통령
축하 메시지 보내

 
FIFA 랭킹 112위인 약체 베트남 축구의 선전이 현지 사회에 미친 파급력이 대단했다.
앞서 박 감독을 놓고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코치로 이끌었으나 감독으로서는 이렇다 할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면서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현지 언론도 이제는 박 감독의 팬클럽이 된 모습이다.

현지 언론은 앞 다퉈 박 감독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략과 용병술 외에 97세 어머니와 부인을 한국에 두고 베트남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박 감독이 홀로 라커룸에 남아 눈물을 훔쳤다는 내용 등 ‘인간 박항서’에도 주목하고 있다.

박 감독은 고향이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로 4남1녀 중 막내다.

박 감독 소식에 어머니 박순정 여사가 막내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달 29일 허기도 산청군수는 산청읍 소재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박 감독의 어머니를 찾아 축하의 말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다.

박 감독의 노모는 얼마 전부터 몸이 불편해져 낮에는 복지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같이 살고 있는 셋째 형 삼서 씨가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9월 박 감독이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막내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박 감독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리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박 여사는 이날 “우리 막내아들이 무척 대견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형 삼서 씨는 “동생이 우승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니 만큼 미련은 털어버리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면서 “그게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부임 3개월여 만에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아시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박 감독의 노고에 우리 국민도 기뻐하고 있다”고 축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박 감독이 이끈 베트남 대표팀이 준우승을 차지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눈보라 속에서 연장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또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한결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아 기쁘다”면서 “박 감독의 활약과 베트남 축구 대표팀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고 전했다.
 
베트남, 박 감독에게
‘3급 노동훈장’ 수여

 
지난 1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는 박항서 감독을 독점 인터뷰했다.

박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솔직히 나는 한국축구에서 거의 퇴출당한 상태였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나에게 기회를 준 베트남에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면서 “하지만 내 속은 대한민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베트남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난생처음 눈(雪)을 본 선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만큼 잘 싸워줬다. 베트남 선수들은 이겨본 기억이 없어 스스로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면서 “라커룸에 갔더니 다 시무룩하게 있더라. 경기는 졌지만 최선을 다 한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죄인처럼 있는 모습이 보기가 싫더라”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처음 왔을 때 베트남 측에게 대표팀의 가장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체력이라고 했다. 제가 봤을 때 체력은 좋은데 다만 체격이 열세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장점이 아닌 약점만 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베트남 축구 대표의 프레임을 부쉈다.

이에 쯔엉 선수는 “(박) 감독은 우리가 자신감을 갖도록 저희를 믿어줬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의 능력은 그 선수들에 맞서 싸우기 충분하다고 했다. 우린 그걸 증명했다”면서 박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축구 변방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박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나 다름없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3급 노동훈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과 선수단이 귀국하자 수천 명의 환영인파가 몰려 밤새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베트남축구협회는 박 감독과 선수들의 사진으로 장식한 지붕이 없는 오픈버스 2대와 슈퍼카 4대를 준비해 하노이 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에서 감독까지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사령탑을 맡았다. 성인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앞서 박 감독은 1978년 제20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된 이후 1979년 당시 대표팀 2진인 충무에 선발됐으며 1진인 화랑팀을 오가며 활동했다.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곧바로 육군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해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한 박 감독은 1996까지 LG치타스에서 코치로 있다가 1997년 수원 삼성으로 옮겼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가 된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 신화를 도왔다. 푸근한 외모로 코칭스태프‧선수들의 가교(架橋) 노릇을 훌륭히 해낸 바 있다.

이후 포항스틸러스,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창원시청 등에서 지도자 길을 걸었다.

거센 항의로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아 비판도 들었으나 특유의 소신을 좋아하는 팬들도 적잖았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베트남 축구가 어느 정도 잘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동남아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박 감독과 베트남이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어떤 축구를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선전은 향후 아시아 축구 판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이 선수들은 올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주축으로 뛸 것이 유력한 상황. 향후 베트남 성인 축구를 이끌어 갈 재목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의 행보에 여론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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