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상 최대 가상화폐 해킹사고 발생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일본에서 사상 최대 가상화폐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에 본사를 둔 일본 유수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체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스템에 공인받지 않은 외부인이 접속해 고객들이 맡겨둔 580억 엔(약 5648억 원) 상당의 넴(NEM·이코노미무브먼트) 코인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어 코인체크는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가 사라지지는 않았다”면서 “좀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 모든 가상화폐의 엔화 인출 및 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코인체크에 따르면 해킹이 시작된 것은 지난달 26일 오전 3시께로, 코인체크는 이로부터 8시간 후인 같은 날 오전 11시께 이 사실을 확인하고 단계적으로 거래를 중단시켰다. 코인체크는 이어 오전 11시 25분께 자사의 NEM 잔고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때는 약 5800억 엔이 불법으로 이체되고 난 뒤였다. 오후 12시 7분 블로그 안내를 통해 고객들은 그들의 NEM 예치 계좌가 동결된 것을 통보받았으며 더 상세한 사항은 추후 알려주겠다는 사실을 공지 받았다. 하지만 코인체크의 영업 정지는 확대됐고 이 회사는 오후 4시 33분 모든 인출을 동결했다. 이어 이 회사는 오후 5시 23분 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 화폐의 거래를 동결했다. 

코인체크는 사건 발생이 알려지고 난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 이번 해킹 사건 피해자 전원 26만 명에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코인체크는 이날 보상액(피해액 중 자체 보유분 등 제외)이 460억 엔(약 4480억 원)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매매 정지 시 가격과 그 후 다른 거래소의 가격 등을 참고해 보상액을 결정해 자사의 ‘자기자본’ 등을 재원으로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보상은 엔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인체크는 보상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만 밝혀, 이 회사가 실제로 전부 보상을 이행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일본 경찰은 전날 코인체크의 담당자를 불러 도난 경위 등을 청취하는 등 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해커가 접속 흔적을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해킹한 사람을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보안회사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에 “침입 흔적이 시스템에 남아있지 않으면 도난된 통화를 되찾아 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코인체크에 대해 업무 정지 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신문에 따르면 금융청은 코인체크가 미흡한 안전대책으로 거액의 고객자산을 탈취 당한 사태를 중대하게 보고, 업무 정지 발동을 포함한 재발 방지와 근본적인 관리 체제 강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번 해킹은 2014년 일본 마운트 곡스 거래소에서 발생했던 470억 엔(약 4577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 해킹 사건을 뛰어넘는 규모다. 당시 해킹으로 마운트 곡스는 파산을 신청했으며 피해자들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환불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신문은 이번 사건이 비트코인과 디지털 화폐의 굴곡진 9년 역사에서 최대의 해킹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열풍을 냉각시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WSJ는 “정부 규제 당국의 사이버 공격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 분야의 투자자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오클라호마 주 툴사 대학에서 사이버 보안을 담당하는 타일러 무어 교수는 “비트코인과 다른 가상화폐들은 사이버 범죄자들의 가장 신선한 먹잇감이 되고 있다”면서 “가상화폐 거래소가 전통적인 금융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보안을 확보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코인체크 해킹사건에 앞서 스위스 산간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세찬 공격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모인 2018년 다보스포럼에서는 아예 가상화폐가 포럼의 정식 토론 주제로 선정됐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여러 지도자들은 가상화폐의 미래를 진단하면서 문제점을 비판하고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5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점점 더 많은 종류의 가상화폐가 개발되고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미국 경제방송 CNBC 인터뷰에서 “IMF는 이미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익명성을 통한 테러 자금 조달, 돈세탁 등 어떠한 종류의 불법 거래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떤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순기능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미 정부의 관심사는 가상화폐의 불법적 사용 여부다. 음지에서 불법 거래하거나 자금 세탁 수단으로 쓰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트코인 거래에는 은행 거래와 같은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화폐는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단이 돼야 하는데, 하루에 25%씩 변동하는 통화는 화폐가 될 수 없다. ‘가상화폐’라는 말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과열 현상을 ‘전형적인 거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도 “권위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가 비트코인 등을 비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어 가치가 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뱅크의 세실리아 스킹슬리 부총재는 “가격 변동이 심해 저축 수단으로 불안정하고 일상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게 극히 제한적이라 통화 대체 수단으로서 매력이 없다”며 “10년 안에 중요한 통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비트코인을 ‘흥미로운 실험’으로 분석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붕괴를 예측했다. 가상화폐는 현재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의견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다보스포럼에서의 이번 논의는 가상화폐를 세계무대로 더 가까이 불러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