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한파가 매서운 겨울을 맞았다. 익숙하지 않은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어 머릿속까지 얼어붙는 느낌이다.
 
그저 따뜻하고 안락한 곳을 찾기에 정신이 없다. 그래서인지 카페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잠시나마 몸을 녹이려는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한낮인데도 매서운 날씨에 잠시 들른 카페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가득하였다.
 
문득 예전 패스트푸드점의 모습이 연상된다. 1988년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1호점이 오픈을 하면서 당시 몰렸던 인파로 연일 화재였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 새로운 외식문화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한 끼 식사가 되었던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맛도 좋았지만 항상 쾌적한 공기와 온도, 대화를 나누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음악과 적절한 소음, 그리고 늘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직원들까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에 매료되었고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패스트푸드점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된다.
 
그리고 규격화된 매뉴얼로 어느 매장에서나 동일한 서비스를 받으며 익숙한 편안함과 함께 점차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 되었다.
 
어느 세대나 대표적 약속장소가 되었던 패스트푸드점은 날씨가 궂을 때면 더더욱 손님들로 북적였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며 다양한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철저하게 지켜지는 메뉴얼과 물리적 환경에 대한 여러 연구가 발표되면서 더 많은 고객유치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리적환경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매우 중요한 서비스전략이 된 것이다.
 
유행이 지나 익숙한 안락함을 주던 매개체는 햄버거에서 커피로 바뀌게 된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세심하게 소비자의 패턴과 니즈를 읽어가며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힘을 썼다. 그 결과 카페는 단순히 커피만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감각적인 공간이자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성장하였다.
 
여기에 예전 패스트푸드점과는 다른 모습이 있다. 소비자들은 삼삼오오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공간과 더불어 안락한 의자에서 누구의 시선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젠 혼자 이어폰을 꽂고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꺼내어 개인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카페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런 손님들을 위해 자리마다 전기콘센트를 꼽을 수 있도록 설비도 되어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순영향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예전 처음 스타벅스가 오픈했던 시절, 한 강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강연자는 미국의 문화와 비교를 하며 우리의 스타벅스에는 책을 읽는 모습은 없고 수다나 떠는 여대생들밖에 없다며 한국의 카페문화를 비하하는 언급을 했었다.
 
그때 들었던 불쾌감은 이제는 보란 듯이 당당함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런 문화가 너무 지나쳐서일까. 요즘 카페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대용으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 ‘카공족’ 때문이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카페 문이 닫을 때까지 자리를 쓴다거나 아예 주인과 함께 출근과 퇴근을 같이 하는 염치없는 손님들이 생기면서 주인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한국에 새롭게 커피전문점 문화가 생긴지 18여년이 되었다. 커피의 산업은 이제 성숙기에 다다랐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집착과 열풍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카페는 여전히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식을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시민의식은 점점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책을 읽는 시간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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