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과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덮어쓴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 해 총선에서 50석도 못 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121석을 차지했다. 기사회생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런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박근혜 당 대표가 호화 당사를 버리고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한 채 허허벌판에 천막을 쳤기 때문이다. 이른바 ‘천막당사’였다. 
당시 천막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요란하게 펄럭거리는 데다,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으로 인해 누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박 대표는 손에 붕대를 감고 유세에 나서 한나라당의 잘못을 사죄하면서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 대표를 비롯한 당원 모두가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도 한나라당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재보선 참패’, ‘디도스 공격’ 등으로 필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정치권을 압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과반을 넘기는 의석을 차지했다. 이때도 박근혜 당시 전 대표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전면에 나섰다. 
그렇게 위기를 극복했던 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는 지리멸렬하면서 진보 진영인 민주당에 맥없이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보수 궤멸을 자초했다. 
현 자유한국당 상황은 2004년 그때보다 더 위기다. 탄핵 후 치러지는 지방선거여서 한쪽(민주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분위기 그대로다. 어디 한 곳 만만한 곳이 없다. 한국당의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의 반도 안 된다. 그마저 개혁보수를 빙자한 세력이 정체성도 다른 당과 합치며 대한민국 보수를 갈라치기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당은 ‘천막당사’의 상징적 정신은 고사하고 ‘선당후사’하려는 인사도 없다. 그 누구도 ‘험지’에 출마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석수 117석의 거대야당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홍준표 대표가 홍정욱 전 의원(헤럴드 회장)을 서울시장에 내세우려 했으나 홍 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성 최다선인 나경원(4선·서울 동작구을) 의원과 김용태(3선·서울 양천구을)의원 등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전략공천 대상자로 떠오른 장제국 동서대 총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이 출마를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경북도지사의 경우는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 3명이 출사표를 던진 정도로 ‘꽃길’만 걷겠다는 심산이 자유한국당을 지배하고 있다.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기적을 일궈낸 인물이 김부겸 의원과 이정현 의원이다. 민주당 출신이 대구에서, 한국당 출신이 호남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 여건상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곳에서 둘은 거듭된 실패 끝에 의원 배지를 달았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위기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했다. 진정성 있고 충성도 높은 사람은 큰 위기 때 자신보다 조직을 위해 몸을 던진다. 반면 정치력이 약하고 위선적인 사람은 큰 위기는 고사하고 작은 위기에도 ‘난파선의 쥐떼’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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