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가 조장한 사법부의 정치화」
「입법부가 조장한 사법부의 정치화」
  • 고재구 회장
  • 입력 2018-02-14 19:00
  • 승인 2018.02.14 19:00
  • 호수 1242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슬람 7개국 출신자의 입국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 의해 잇따라 제동이 걸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 사법체계 전체를 거세게 비난한 적이 있다. 이는 당연하게 심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삼권분립 원칙을 해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편인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가 의회의 반발을 샀다. 행정부가 의회 동의 없이 러시아 제재를 금지하는 것은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권력분립을 헌법에 명시하고, 그 원리를 바탕으로 정부를 세워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 세계 첫 번째 국가다운 모습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두고 아직도 말들이 많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원이 수백 건 올라오는가 하면, 시민단체들은 법원을 향해 “정경유착 공범에게 면죄부를 준 사상 최악의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특히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의에 역행하는 사법부는 존재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더 난리였다. 민주당은 “정경유착을 판단해 달랬더니 판경유착이 돼버렸다”며 “사법사상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될 판결”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국당은 반대로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고 논평했다. 
모두들 사법부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심한 모욕으로 비춰졌다. 
하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동안 주요사건이나 특히 정치색 짙은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고분고분 받아들인 적이 어디 있었는가. 자기네 뜻대로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정의는 죽었다”고 아우성치고, 원하는 쪽으로 판결이 나면 “정의는 살아있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게 정치권을 필두로 정치색 강한 이 땅 시민사회 정서였다. 
말이 좋아 삼권분립이지 그동안 행정부는 물론이고 입법부가 마치 법위에 군림하듯 사사건건 사법부를 압박한 결과가 오늘날 사법부의 정치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정치적 논리와 연결 짓게 되는 재판이 많아져서 사법부에서마저 이념과 세대 간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형편이다. 판사가 “재판이 곧 정치…” 운운한 지경이다.   
사법은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 해결의 최종 절차이다. 따라서 사법이 정치화하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개입이나 불복 운동이 부메랑처럼 뒤따를 것이 확실하다.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인민재판’‘여론재판’이 횡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정치권이 사법부를 향해 보이는 행태는 견제의 수준을 넘어 가히 초헌법적이라 할 만하다. 
사법부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법관 개인이 법률 지식과 양심에 의거해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고 그들에게 사법 판결의 권한을 넘겼다는 뜻이다. 
3심제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1심과 2심 판결은 대법원에 의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숱하게 목격한 터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판결도 전혀 다르지 않다. 항소심 결과가 1심과 달라진 것은 이 부회장과 그의 변호인단이 일부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을 만한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판사를 욕하는 것은 사법부에 권한을 넘긴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나 같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