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바깥으로 공개된 중국의 학내 성희롱
캠퍼스 바깥으로 공개된 중국의 학내 성희롱
  • 곽상순 언론인
  • 입력 2018-02-19 13:56
  • 승인 2018.02.19 13:56
  • 호수 1242
  • 2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에서 ‘미투(me too) 운동’ 확산될지 주목
미국 거주 중국 여성, 10년 전 당한 성폭행 고발
중국 여대생 75%, “성희롱 당한 경험 있다” 답변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겨울 호에 사실상 실명으로 원로시인의 성희롱을 고발한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한국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최 시인은 문제의 시 발표에 이어 방송에 출연해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며 추가로 폭로했다. 여성 검사의 성희롱 폭로에서 촉발된 한국의 ‘미투(me too, 나도 성희롱 당했다)’ 운동은 문화계로 확산되고 있다. 여성 영화감독의 동성 성폭행까지 불거졌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 이후 잇따르고 있는 후속 ‘미투’에 주목해 외신은 “한국이 ‘미투’ 운동에 동참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유력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가 최근 중국의 ‘미투’운동을 전하고 있다.

베이징항공항천대학(北京航空航天大學)에 다니던 여학생 뤄시시는 그녀의 논문 지도교수였던 첸샤오우에게서 꽃나무를 보살피는 데 도움이 필요하니 그의 여동생 아파트로 함께 가자는 요청을 받고 그를 따라 아파트로 갔다. 하지만 그것은 구실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첸샤오우는 그녀를 성폭행하려 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녀를 구해 준 것은 그 교수에게 걸려온 아내의 전화였다. “나는 처녀란 말이에요!”라는 그녀의 절규도 도움이 됐다. 30대의 나이로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일하는 뤄는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10년도 더 전에 있었던 교수의 성폭행 시도를 고발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모교인 베이징항공항천대학에 항의 서한을 보내 이 대학 대학원 부원장인 첸을 성폭행 혐의로 공개 비난했다. 뤄는 300만 명이 읽은 온라인 서한에서 그녀 자신을 첸이 능욕한 여성 7명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그러자 베이징항공항천대학은 첸을 직위해제했고 이어 파면했다. 중국 교육부는 성희롱을 방지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뤄시시의 행동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적절한 행실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전국 차원의 토론을 촉발했다. 활동가들은 그것을 중국판 미투 운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뤄시시의 노력은 후속 폭로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문제가 만연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예계나 기업계로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성희롱을 문제 삼고 나서는 젊은 여성들은 그들의 노력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지거나 은밀히 방해받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LAT는 전한다. 중국에서 많은 대학들은 온라인 청원을 묵살하고 있다. 정부 검열관들은 공개 서한을 삭제하고 있다. ‘#미투 중국’ 해쉬태그(‘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특정단어' 형식으로, 특정 단어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기능)는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졌으며, 성희롱에 반대하는 글들도 마찬가지로 삭제됐다. 성희롱 주장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하는 서한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삭제당한 경험을 가진 저명한 여권 운동가 샤오 메일리는 “삭제는 그 운동에 커다란 방해물”이라면서 “이전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뭔가를 하면 그것이 급진적이라고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서한을 작성하는 것 또한 아마도 급진적”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절규는 언론매체를 통제하고 대중의 견해를 속박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용납 범위를 벗어날 위험이 있다. 2015년 성희롱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려던 여권 운동가 5명을 구금한 적이 있는 중국 공산당은 성(性)평등 운동이 안정된 사회라는 당의 목표에 부합한다고 언제나 판단하지는 않는다. 중국 여권단체인 ‘보이스 오브 페미니즘’에 따르면 지난 1월 하순까지 졸업생 단체들이 70곳이 넘는 대학들에 서한을 보냈다. 그 서한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용자가 7억 명이 넘는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에 게시됐다.

그런데 그 게시물들이 있었던 자리는 이제 대형 느낌표가 찍힌 빈 공간으로 대체됐으며 해당 게시물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고지문이 첨부됐다. 자세한 사연을 담은 스토리가 학대 문화를 폭로한 미국 ‘미투’ 운동과 달리 중국에서 여성들이 가장 크게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은 온라인이다. 중국에서 성희롱 관련 법률은 흐릿하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중국 사회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오명을 감수해야 한다. 베이징항공항천대학의 한 여자 대학원생은 “뤄의 폭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을 전부 신뢰하지는 않았다”며 “교수의 인격이 이토록 엉망일 수 있는지 그것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LAT에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주제의 민감성을 들어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학 내 성희롱 문제는 중국에서 대체로 방치돼 왔다. 비영리 기구인 ‘광저우 성교육 센터’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의 근 70%가 성희롱에 직면한다. 여성 응답자들의 경우 그 비율은 75%였다. 광저우 소재 중산대학(中山大學)의 사회학과 조교수 페이 유신은 “피해자들은 그들의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종종 피해자를 탓하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해당 기관은 그들을 기관 명성을 더럽히는 말썽꾸러기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명성을 보호하는 데 열심이며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학교 당국자들은 검열관으로서도 행동할 수 있다.7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대학원생인 구 화잉은 부적절한 행위를 다루는 강좌 개설을 요청하는 서한을 그녀의 모교인 베이징대학에 보냈다. 그러자 대학 당국자들은 그녀가 분란을 일으키려 한다며 그녀를 나무랐다. 그녀의 서한은 중국의 유력한 검색엔진에서 삭제됐다. 그러자 구 화잉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무엇을 그리 걱정하며 당황해 하는가?”라고 항의성 글을 올렸다. 이런 당국의 압력도 있지만 성희롱 피해자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한대학(武漢大學)의 저널리즘 교수 수 카이빈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 제고를 촉구하는 온라인 성명에서 “대학 교수로서 우리는 동료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깊이 분노하며 이를 심각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에 접한 여권 활동가들은 대학에서 시작된 중국의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대학과 그 주변에서만 맴돌다 잦아들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LAT는 전하고 있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