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칠사> 저자 고두현 / 출판사 토트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요즘 출간되는 책들의 공통된 주제를 유심히 살펴보면 부의 추월차선에 대기해 한탕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돕는 고수비법(?)을 소개하는 책들이 주를 이룬다. 한 순간에 150만 원으로 450억을 벌었다는 가상화폐 노름터에서 신흥부자로 계층을 달리한 젊음이들이 부럽기만 할 수 도 있다. 주식투자로 인생 반전을 노리는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기억으로 남은 책들을 접한 지 참으로 오래됐다. 이 시대 언급되어야 할 진정한 ‘고수비법’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 어루만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는 일이다.

이러한 비법을 전하는 기특하고 가상한 책 한권이 있다. 다름 아닌 마음의 손으로 문장 속살을 어루만지게 하며 초고속을 고집하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생각하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연필로 긁적이며 옮겨 적었던 내 마음의 시와 문장들을 기억해가며 추억과 교감하는 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 ‘마음필사’는 독자 자신의 마음을 따라 꿈꿨던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책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깊이를 끌어 내는 시인 고두현이 오랜 세월 자신의 마음에 품어온 시와 명문장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고 보면 된다. 

문화계에서 ‘잘 익은 운율과 동양적 정조, 달관된 화법으로 전통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으며 박목월의 시를 방불케 하는 가락과 정서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는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으로 1988년 한국경제신문 입사 후 주로 문화부에서 문학과 출판을 담당했고, 문화부장을 거쳐 지금은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에 담긴 속깊은 지혜와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붓는 저자의 ‘마음 필사’는 총 여섯 마당으로 이뤄져 에세이와 시, 명문장이 사진과 함께 다채롭게 구성됐다.

고래의 꿈으로 시작하는 첫째마당은 정희성의 ‘태백산행’으로 시작해 새뮤얼 울먼의 ‘청춘’, 송찬호의 ‘고래의 꿈’이 소개된다. 윤준경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과 안도현의  ‘땅으로’ 등으로 첫마당을 꾸몄다. 첫 장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가는 세월의 아쉬움을 소복히 쌓인 눈처럼 조용히 써내려 갈 수 있는 문장들로 이뤄 졌다.

둘째마당으로 시작하는 ‘그대 생각하노라’에서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깊은 소중함과 아쉬움을 전하는 필사로 채워졌다. 칼릴 지브란의 ‘사랑하라, 그러나 간격을 두라’와 도종환의 ‘벗 하나 있었으면’, 정지상의 ‘임을 보내며’ 등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다가간다. 

자신을 돌아보는 셋째 마당에서는 푸시킨의 ‘너의 자유로운 혼미’와 정호승의 ‘햇살에게’, 윤동주의  ‘자화상’등이 소개된다.

주위의 아름다운 꽃으로 환기시키는 정서를 고스란히 전하는 넷째 마당에서는 김수영의 ‘풀’과 정약용의 ‘혼자 웃다’, 랄푸 왈도 에머슨의 ‘성공이란’ 등으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삶을 다독이며  침묵으로 생을 아끼는 마음을 전하려는 다섯 째 장과 여섯째 장에서는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가던길 멈춰 서서’와 세라 티즈데일의 ‘아말피 밤 노래’, 백거미의 ‘술잔을 들며’등 으로 독자가 마음을 가다듬게 했고 헤르만 헤세의 ‘홀로’와 천상병의 ‘귀천’으로 마음을 채우게 했다.

또 저자의 감성 에세이 6편과 마음에 새기는 명문장 41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에 수록된 총 91편의 시와 명문장, 에세이는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는 20여장의 사진과 함께   한다. 

저자는 “필사는 잊고 있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더듬고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일이다. 손으로 쓰고 손으로 생각하는 동안 우리의 삶은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고단한 삶의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지만 다시 꿈을 찾아 날아오르기 위해,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옛사랑을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살피는 마음, 그리고 삶의 애환과 이별 그 너머까지, 시인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라임을 만들고 생각의 고리를 엮어간다”고 수줍게 강조한다.

이 책을 접한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필사는 애무다. 저자가 품은 그리움의 숨결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독자와 혼연일체가 되는 한바탕의 뜨거운 격정이다. 향기로운 그 몸짓과 함께 한 줄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 속으로 젖어들고 그는 내 속으로 들어와 요동친다”고 서평을 남겼다.

저자의 또 다른 책으로는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시에세이집 ‘시 읽는 CEO’ ‘옛 시 읽는 CEO’ ‘마흔에 읽는 시’ 독서경영서 ‘독서가 행복한 회사’ ‘미래 10년 독서’ 등이 있다. 동서양 시인들의 아포리즘을 담은 ‘시인, 시를 말하다’를 엮었고 ‘곡선이 이긴다’를 공저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