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운전 강요하는 업계 관행이 문제

- 마약에 손대는 화물차 운전자 점점 더 늘어나…잠재적 대형 교통사고 우려
- 최근 탈북민과 화물운전자 등 통한 북한산 마약류 공급 증가…대책 마련 시급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적지 않은 운전자들이 마약에 취한 채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자칫 끔찍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으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심야시간에 운행해야 하는 운전자들이 졸음을 쫒기 위해 사용한다는 마약은 대마초는 물론 필로폰, 코카인, 엑스터시 등 그 종류도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 탈북민과 화물운전자 등을 통한 북한산 마약류의 공급이 증가하고 있어 당국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 2016년 10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대마초와 필로폰 등 마약을 투약한 채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한 7명의 운전자들이 경찰 단속에 검거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마약에 취한 채 운전을 한 이 운전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빈번하게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켰던 심야 화물차 운전자들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마약 투약의 이유였다. 잠을 쫓거나 피로 해소를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것. 각성효과가 뛰어난 마약을 하면 그만큼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무리한 운송 스케줄로 인한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환각 상태로 운전하는 것이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마약을 판매한 화물운송영업소장과 마약을 투약한 화물차 운전기사 7명 등 총 18명을 검거,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검거된 화물차 운전자들 가운데는 길게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경찰은 야간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동종의 사례가 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관계기관과 함께 수사를 확대한 바 있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화물차 운전자들에 대한 무리한 운행을 강요하는 업계 관행에 비판이 제기됐고 업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마약에 손을 대는 화물차 운전자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늘고 있다는 게 관계 당국의 진단이다.

지난해 2월에도 덤프트럭 등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필로폰, 대마초 등 마약을 투약하고 운전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된 운전기사들은 자신의 주거지와 모텔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필로폰을 투약하고 대마초를 피운 후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고속도로 제설차량과 택배차량을 몰고 아찔한 곡예질주를 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환각상태에서 운행…말 그대로 ‘시한폭탄’
 
필로폰 등 마약을 투약한 후 운전할 경우 중추신경이 마비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졸음운전’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투약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기력증이나 피로감이 몰려오기 때문에 치명적인 위험이 뒤따른다.

특히 1~2주 동안 휴일도 없이 연속근무를 하는 등 과도한 근무환경에 노출돼 있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마약을 투약하고 운행할 경우 훨씬 심각한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마약 투여 화물차 운전자에 대한 단속 등 경찰이 수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마약 투약 화물차 운전자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마약 공급 루트가 다양화하면서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산 마약류의 공급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마약 관련 사범은 마약의 투약과 판매뿐만 아니라 마약을 소지하거나 보관, 알선 및 수수, 교부, 밀수, 제조 등 거의 모든 행위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해외 직구나 판매 등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특히 마약이나 졸피뎀 등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투약하고 운전할 경우 국내법상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마약류관리법 위반은 물론 도로교통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도로교통법 제45조는 ‘과로, 질병 또는 약물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처벌보다 더 큰 문제는 대규모 인명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 실제로 화물차 운전자들이 술이나 마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서 오랜 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마약 투약 후 교통사고는 대부분 사망사고 등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 졸음운전 사고의 치사율은 22.4%. 이는 졸음운전 교통사고 다섯 건 중 한 건 꼴로 큰 인명 피해가 난다는 의미로 전체 교통사고의 치사율 2.3%에 비교하면 10배에 이르는 높은 수치다. 그렇기에 졸음운전보다 더 큰 위험을 부르는 마약에 취한 화물차는 도로 위를 달리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피로, 마약으로 해결?···다단계 하청구조 해결 시급
 
화물차 운전자들의 마약 투약은 근본적으로 ‘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특히 화물운송업의 경우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해 영세업체들이 난립해왔고 지입제와 다단계 하청으로 차주들이 정당한 권리와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해, 장시간 노동과 과속을 통해 수입을 만회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화물차 교통사고는 연 평균 3만 건을 넘어서고 있고 이 가운데 사망사고도 1000여 건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04년 이후 화물자동차운송업과 주선사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직접운송비율제도 등 강력한 규제책을 도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편, 운전자들이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조직폭력배나 연예인 등 일부 계층만이 접할 수 있었던 마약이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스마트폰 등 IT기술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인터넷 직구 등이 활성화됨에 따라 편리해진 국제거래를 통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일부 층들로 국한됐던 마약사범이 가정주부, 회사원 등 일반인들로 확대되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들도 손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상황이 이렇지만 마약사건의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 국제화 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대응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법규 및 인력 재편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의 종류도 기존의 대마초와 필로폰, 코카인에서 최근 엑스터시, 프로포폴, LSD 등 다양한 종류로 분화하고 있다는 게 수사기관의 전언.

특히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즉 ‘마약류관리법’에는 마약을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및 원료물질을 직접 규정하는 동시에 이와 동일하게 남용되거나 해독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화학적 합성품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물질이나 약물 등도 마약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자칫 의도치 않게 마약사범이 될 수도 있다.

마약 투약 후의 화물차 운전은, 운전자 자신은 물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로 철저한 단속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히 강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도한 운송 스케줄과 이로 인한 수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마약 투약이 ‘도로 위를 달리는 시한폭탄’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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