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없이 못 사는 세상… 입법 보좌진 ‘특별’
- 국회 법안 발의 최소 10명 동의… 세일즈맨 ‘자청’

 
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원과 보좌진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국회는 헌법이 정한 입법기관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며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입법 주체다.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52조에 따라 정부도 법안을 제출할 권리를 가지지만, 법안을 제정하거나 개정, 폐지할 권한은 국회에게만 있다. 그런 까닭에 4년마다 새로 열리는 국회에서는 1호 법안 접수를 위해 보좌진들이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밤을 새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현재의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발의된 1호 법안은 박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 설치 특별법’이 차지했다. 보좌진들이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 매트를 깔고 밤을 새웠다.
 
지난 19대 국회의 1호 법안은 김정록 의원의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 차지했다. 보좌진들이 사흘을 번갈아 밤을 새웠다. 18대 국회에서는 이혜훈 의원의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차지했다.
 
다른 의원실과 제비뽑기에서 이겨 1호 법안 자리를 차지했다. 1호 법안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되지는 않지만 상징성이 있다보니 보좌진들이 밤을 새우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각 당 상징성 1호 법안
보좌진 밤샘 노고
 
1호 법안은 당별로도 따로 의미를 두고 발의한다. 이제는 집권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20대 국회 1호 법안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여한 당론법안이었다. 국민의당의 1호 법안은 ‘공정성장법’이었다.
 
새누리당은 ‘청년기본법’을 비롯한 9개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민주평화당은 1호 법안을 영세상인 카드 수수료 인하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으로 정했다. 각 당의 1호 법안은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유권자들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다.
 
이렇게 경쟁하듯 만들어지는 법안들의 운명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법안들은 발의 후 바로 잊힌다. 해당 상임위 논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법안은 상대적으로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17,822개였다. 이중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7,429건이었다.
 
법안 안 처리율은 41.7%로 절반을 못 넘었다. 이 수치가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 성과를 법안 발의 숫자로 평가받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우리나라 국회의 법안 발의와 처리 숫자는 국제 기준에서도 많은 수준이라고 한다.
 
보통 의원실마다 법안을 담당하는 비서관이나 보좌관을 따로 둔다. 주로 정책 담당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법안을 담당한다. 법안을 만들어 의원 이름으로 대표발의 하는 일 뿐 아니라 다른 의원의 법안을 검토하고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일까지를 포함한다.
 
법안 담당 보좌진의 권한은 의원실마다 다르다. 법안 발의는 의원의 권능인 까닭에 의원실 마다 부여받은 재량의 한계가 있다. 법안 담당 보좌진이 전결로 처리하는 의원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의원실에서는 법안 발의에 대해서만은 의원이 직접 챙기는 경우가 많다.
 
법안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다양하다. 의원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관심사를 반영해서 법안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보좌진들이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중에 찾은 아이디어를 법안으로 만들기도 한다. 민간에서 법안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나 협회를 비롯한 각종 이익단체는 관심 갖는 이슈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입맛에 맞게 법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특정기업이나 개인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원성 법안이나 요구를 들고 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최종적으로 의원실 보좌진과 국회 법제실의 검토를 거쳐 법안으로 발의된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려면 10명 이상의 의원이 발의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도장 10개’를 모으는 게 중요한 일 중에 하나다. 보좌진들은 일단 법안을 만들고 나면 법안을 들고 각 의원실을 돌며 세일즈에 나선다.
 
다른 의원실에 법안 취지를 설명하고 공동발의를 요청한다. 재량이 있는 의원실의 보좌진은 바로 도장을 찍어주기도 하지만, 의원이 직접 챙기는 경우에는 의원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공동발의 도장도 의원 간, 보좌진 간 친소관계에 따라서 찍어주는 경우가 많다. 서로 법안 도장을 교환하는 품앗이도 자주 볼 수 있다.
 
‘쟁점 법안’보다
‘무쟁점 법안’선호

 
국회에서 법안은 첨예한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법안에 담긴 정치적 지향과 이해관계의 차이는 곧바로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야권은 여권의 ‘규제개혁법’을 처리 못해주겠다고 버텼고, 여권은 야권의 ‘경제민주화법’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법안 발의 과정에서는 쟁점이 없는,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법안이 인기가 많다. ‘무쟁점 법안’이라고 하는데 이런 법안은 하루 이틀 만에도 도장 10개를 모아 발의되고, 본회의 통과도 쉽고, 의원의 입법실적 쌓기에도 도움이 된다.
 
옛말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은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법을 모르면 안 되는 세상, 법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대기업이나 각종 협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법을 공부하고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한다.
 
국회 주변의 눈 밝은 민원인들도 법 조항 하나에 사업의 명운을 건다. 지금은 돈을 잘 벌기 위해서도 법을 알아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에 비해 사회개혁을 위해 일하는 시민사회단체나 개인들 중에는 아직도 ‘법 없이 살 사람’들이 많은 경우를 자주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