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한국의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성폭력·성추행에 휘둘리고 있지만 피해를 제대로 호소하지 못 하는 등 최근 불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사각지대 있어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 악용 피해 사례도 급증한 것으로 조사돼 사회의 경각심이 요구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이 2016년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한 여성 이주노동자들 중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대응한 사례는 6.7%, 노동부에 신고한 경우는 2.2%였다.
 
모름·무응답이 48.9%로 거의 절반에 달했고 말로 항의하거나 참는 경우는 각각 24.4%, 15.6%였다.
 
실제 2년 전 한국에 이민 온 태국 여성 A 씨는 27일 한 매체를 통해 50대 한국인 남자 사장의 잠자리 요구를 거절한 뒤부터 끊임없이 구타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심지어 사장은 A 씨의 얼굴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마구 때리면서도 잠자리를 계속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맞을 때마다 태국에 두고 온 아들을 떠올리며 “‘이러면서까지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에 슬펐지만 돈을 버는 일이 급했다. 체류 허가 기간도 지나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심경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인권 단체들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고용허가제’가 이들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고용허가제는 2004년 8월 시행됐으며 외국인의 국내 고용을 지원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불법 체류자를 줄인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에서 체류하는 3년이란 기간 동안 사업장을 3번 바꿀 수 있지만 사업주가 동의를 해줘야 일터를 옮길 수 있고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이주민 지원 단체들은 고용허가제에 포함된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땐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는 규정은 실속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실제 고용허가제는 ‘노예제’로 간주 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반면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하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고용 당국에 허위 신고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노동자는 졸지에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주민 지원 단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사회권 위원회. 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는 지난해 10월 한국 정부에 이주노동자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는 강력한 권고를 한 바 있다.
 
위원회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용자에게 종속되게 하고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희롱 피해에 무방비라는 지적이 인다.
 
공익인권 관련 단체 관계자는 27일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며 “고용센터들이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고 피해 구제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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