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정사에서 개헌은 그때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여야 모두 개헌 자체에는 동의했으나 시기와 내용에 있어서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평행선을 긋고 있다. 진정 국민이 원하는 방향의 개헌 논의는 연목구어(緣木求魚)로 끝날 것인가. 백년대계가 되어야 할 개헌의 방향이 여권의 ‘일방통행 개헌’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개헌이 지방선거 승리와 국체변경을 위한 당리당략의 도구로 전락하여 우려된다.
 
민주연구원(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김민석 원장은 지난 2월 25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자유한국당을 뺀 야당을 향해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를 위한 ‘약속정치 연대’를 제안했다. 현재 민주당 121석, 바른미래당 30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을 합하면 171석으로, 개헌 발의 정족수인 재적의원(293석) 과반(147석)을 충족한다. 그러나 개헌안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2(196석)에는 25석이 모자란다. 따라서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한국당(116석)이 반대할 경우 정부 주도 개헌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개헌 연대’ 주장은 한국당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이른바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의 전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헌 국민투표 지방선거 연계전략은 다분히 정략적이며, 전례도 없으며, 국민적 동의를 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여권은 대통령 개헌 발의를 통해 합의되는 부분만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는 지역은 ‘1인 9표제’가 되어 혼란스럽게 되고, 개헌에 묻혀 다양성이 중시되어야 하는 풀뿌리 지방선거는 실종되고 만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의 ‘자문위 권고안’에는 기존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고, 헌법 제4조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라는 글자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당도 헌법 제4조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는 개헌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회주의 개헌안’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헌법에서 ‘자유’를 빼고 나면 사회민주주의든 인민민주주의든 민중민주주의든 어떤 식의 민주주의도 가능해진다. 북한도 민주주의란 단어는 쓴다. 스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지방분권 개헌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가장 확실한 지방분권은 ‘연방제’인데 그걸 하자는 것인가. 서유럽은 ‘신 중앙집권’으로 가고 있다. 통일 전까지는 과도한 지방분권을 경계해야 한다. 지방분권에 앞서 선결과제는 세제 개편을 통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재정자립이 되면 지자체 고유사무를 개발해서 할 수 있고 지방분권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여당이 헌법의 기본질서를 건드리는 의도가 우리 헌법이 지난 70년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체제를 ‘민중민주주의’로 바꾸려는 국체변혁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헌법의 ‘자유’ 조항 삭제는 대한민국의 건국 및 정부수립을 부정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을 문 닫겠다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여당의 국헌 문란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3.1절날 우파 및 기독교 시민단체가 ‘개헌반대’ ‘한미동맹 강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총집결했다. 한국당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한민국 체제수호 차원에서 여당의 기도를 막아내야 한다.

87년 개헌의 시대정신은 ‘단임제’와 ‘직선제’였다. 이번 개헌의 시대정신은 ‘분권(分權)’이라는 데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 따라서 올바른 개헌의 방향성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고치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야 하며, 과도한 국회의 특권을 줄이고, 사법부의 독립이 신장돼야 한다. 여야의 이념적 대결을 지양하기 위해 헌법 전문(前文)은 개정할 필요가 없음을 밝혀둔다.
 
올해는 건국 이후 70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한강변의 기적’을 창출한 원동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한 헌법과 한미동맹, 그리고 국민들의 ‘잘살아 보자’는 열망과 굳건한 안보의식 덕분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신라 992년, 고려 475년, 조선 518년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독립된 국가로 영속(永續)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튼튼해야 한다.
 
헌법에는 헌법적 가치인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특정 세력(친북 좌파)이 바라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개헌은 우리 헌법에 담긴 이념과 대한민국의 기본 틀(정체성)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안 된다. 만약 이것을 함부로 건드려서 개헌의 목적과 당위성이 실종돼버릴 경우 국회통과도 안 되고 개헌작업은 실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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