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별검사제

대중 재임시절 3건, 노무현 초기 1건 등 모두 4건의 특검제 실시미국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특검에 의해 탄핵직전 사임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에 관한 특검이 한국 정치의 긴급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별검사제는 기존의 가치체제를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 같다는 점에서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의 가치체제 즉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권부 및 그 지휘선 안의 공권력, 그리고 정치인, 재벌, 또는 그들에게 빌붙은 사기꾼 등이 시대정신과 사회정의와 국리민복을 등지고 반동의 길로 치달을 때 그것들을 옳고 바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창조적 파괴의 무기로 등장한 것이 바로 특별검사제의 근본발상이다. 핫이슈로 떠오른 특검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기득권자들은 말한다. “검사가 있는데 또 무슨 특별검사냐?” 그러나 검사가 항시 사회정의의 기수로 나서며, 민중인 당신의 편에 서서 법을 집행해왔던가? 또 권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본 다음에 특별검사제를 논하자.” 그러나 당신은 광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검사가 임명권자를 향해 칼을 들이대고 그를 치는가 어떤가를 본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의 세월을 기다릴 만큼 당신은 장수할 자신이 있는가? 특별한 방법이란 보통의 방법으로 해결이 안될 때 쓰는 비상수단의 일환으로 동원하는 고육지책이다. 특별검사는 검사를 무력화시키고, 검찰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가 아니라 검사가 하기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을 특별한 방법으로 수행함으로써 그나마 검찰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보완하고, 검찰을 향해 지순지고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부단히 일깨우는 각자(覺者)라고 볼 수 있다. 특별검사제는 결코 자유민주주의나 삼권분립의 원칙을 파괴하는 과격한 제도가 아니다. 이것은 부족한 인간들이 부족한 머리로 창안해낸 기존의 제도로써는 부정과 부패를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입한 응급조치적 성격을 띤다. 현행법상 특별검사는 검찰과 동고동락하는 법조 3륜중 한축인 변호사협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아 탄생한다.

이 사실 자체가 특별검사제는 혁명이나 쿠데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임을 입증한다. 뿐만 아니라 특별검사는 일정 기간 활동한 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따라 관련자들을 기소함으로써 그 이후의 모든 절차를 사법부에 귀속시키고 있다. 특별검사는 제한된 여건 아래서 특별한 수사를 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별검사는 언론이 통상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환경감시기능과 같이 특별한 업무를 한시적으로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기왕에 누려온 권력을 나누기보다는 독점하려는 인간, 민족의 장구한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눈앞의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급급한 인간, 자유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기보다는 그 과실을 따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부류들에게는 특별검사제가 ‘눈엣 가시’요, ‘흉기’요, ‘악마의 채찍’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을 일으키고 은폐와 조작과 오만을 일삼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특별검사가 휘두른 정의의 칼을 맞고 탄핵 일보 직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예를 보라.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서까지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섹스를 일삼던 클린턴 대통령의 엽색행각이 특별검사의 추적에 의해 발가벗겨져 세계의 망신을 산 예를 보라. 많은 사람들이 특별검사제에 의해 명예가 추락한 닉슨 대통령이나 클린턴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동정과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특별검사제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빗나간 행위를 속속들이 파헤칠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특별검사제는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정의의 안전판이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듯 특별검사제는 대통령은 역사와 민족 앞에 떳떳하게 처신해야 하고,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하며, 권력의 요직에 있는 공인은 언제나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을 우선해야 하고, 돈이나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권력과의 관계에 있어서 검은 유착관계를 형성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부단히 일깨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경우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에 3건, 노무현 대통령 초기에 1건으로 모두 4건이 있었다. 특검은 첫째로 옷로비사건 즉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부인인 연정희씨가 대한생명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로부터 호화스러운 호랑이 무늬 코트를 받았느냐의 여부를, 둘째로 검찰이 파업을 유도했느냐의 여부, 셋째로 이용호 게이트의 부정 여부를, 넷째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송금 문제의 실체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 사건들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 옷로비사건

1999년 5월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로부터 1998년 말 고급 옷을 받았다는 소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 이 사건은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연정희씨를 지나치게 비호함으로써 옷로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회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청문회를 개최하였으나 관련 여인들의 거짓말로 이어져 특별검사제를 도입했다. 1999년 10월 8일 옷로비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로 임명된 최병모 변호사는 연씨가 가질 마음으로 호피무늬 반코트를 받았으며, 신동아그룹 로비스트 박시언씨에게 수사기밀을 알린 위법행위를 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검찰 및 사직동팀이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그러나 대검찰청은 1999년 12월 30일 옷로비사건의 진상을 이형자의 자작극으로 촉발된 ‘실체없는 로비’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이것은 특별검사팀이 내린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어서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김태정씨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되어 이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1999년 6월에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터져 나온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은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의 발언은 노동운동을 사실상 봉쇄해온 권력기관의 타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진씨가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지휘를 받았느냐가 핵심 주제였다. 하지만 검찰은 진씨의 공명심에서 생긴 1인극으로 결론짓고 그를 구속했다. 그러나 국회는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특검제를 도입했다. 강원일 특별검사는 진형구 전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강희복 사장에게 11월 24일 집회에 참석한 노조간부 34명 전원을 고발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중재를 거부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하고 그를 기소했으며, 강희복씨도 구속기소했다.한편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는 2000년 7월 27일 직권 남용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이 구형된 진씨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제3자 개입금지)죄만 인정,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이 구형된 강씨에 대해서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위반과 노동조합법 위반죄만 인정, 벌금 3백만원을 선고했다.

◆ 이용호게이트

이용호씨의 전방위 로비사건이 김대중 정권을 또한번 강타했다. 이 사건은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가 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드러남으로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국회는 이 사건에도 특검을 도입했다. 신총장은 광주지방검찰청 출입기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옷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 때도 결국 검찰의 잘못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100% 검찰 수사가 옳았다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자신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2001년 12월 특별검사로 임명된 차정일 특별검사는 수사를 시작한지 한 달만에 승환씨를 금감원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했다. 영장 발부는 승환씨의 범죄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것은 물론 지난해 대검 수사가 제대로 되지 못했음을 ‘공인’한 셈이다. 특검은 또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씨와 대통령 측근 이수동씨를 구속함으로써 신총장을 퇴진케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 대북송금 의혹사건

2003년 3월 26일 임명된 송두환 특별검사는 국가정보원이 현대상선으로부터 받은 2억 달러, 현대건설 1억 5천만 달러, 현대전자 1억 달러 등을 북측에 제공한 것으로 밝혔다. 특검은 현대그룹이 지급한 4억 5천만 달러는 대북 경제협력사업의 선투자금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1억 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지원금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특검은 4억 5천만 달러(현대그룹 부담의 현물지원분 5천만 덜러 제외)가 정상회담 전에 모두 송금되고, 송금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였으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아니하고 비밀리에 송금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아니하였던 관계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송두환 특검팀은 5월 20일에 수사를 시작하여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긴급체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기간의 연장을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특검은 구속기소 3명(이근영, 이기호, 박지원), 불구속기소 5명(박상배, 임동원, 최규백, 정몽헌, 김윤규)의 성과를 올리고 6월 30일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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