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까칠남녀’ 하차 그 후, 은하선 작가 인터뷰
EBS ‘까칠남녀’ 하차 그 후, 은하선 작가 인터뷰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8-03-02 21:22
  • 승인 2018.03.02 21:22
  • 호수 1244
  •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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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로 사는 것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지난 2월 5일 EBS ‘까칠남녀’가 종영했다. 당초 ‘까칠남녀’ 종영 예정일은 19일이었다. 2주 빨리 종영이 앞당겨진 이유는 성소수자 특집 논란 때문이었다. EBS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2부작으로 성소수자 특집을 방영했다. 하지만 방송 후 일부 시민단체들이 게시판 등을 통해 출연자 하차와 프로그램 폐지 등을 요구했고 EBS 측은 논란의 주역인 패널 은하선 작가를 ‘개인적 결격 사유’를 이유로 하차시켰다. 이후 다른 패널들은 은 작가 하차에 대한 보이콧 의미로 방송 불참을 선언했고 결국 ‘까칠남녀’는 조기 종영되고 말았다.

“논란, 흐지부지 끝나”…“EBS, 제작진에 사과 안 해”

일요서울은 은하선 작가 인터뷰를 통해 ‘까칠남녀’ 하차 후일담과 함께 여성이자 성소수자 그리고 섹스칼럼리스트 등으로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은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은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EBS ‘까칠남녀’ 하차 후 어떻게 지냈나?
-지난 1년 동안 방송 일을 계속했지만 방송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일이 있다. 가게도 하고, 글도 쓴다. 오히려 ‘까칠남녀’를 하차하게 되면서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오늘 까칠남녀 하차 통보를 받은 지 딱 한 달 되는 날이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가’라고 물었다. 한 달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굉장히 정신없었다. 그 이후로도 글을 쓴다거나, 내가 하던 활동을 계속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까칠남녀’ 하차 당시 여러 논란이 있었는데, 정리는 다 됐나?
-정리도 정돈도 아니고 그냥 흐지부지 끝난 거다. 이슈화될 만큼 이슈가 됐고, 그 다음엔 어느 정도 소강되는 상황이다.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그대로 끝났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고, 제작진들은 제작권 자율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게 2화를 못 한 채 끝났다. EBS측에서 제작진에게도 사과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그런 것들이 아무 것도 되지 못했고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사실 그건 정리가 아니다.

▲성소수자로서의 삶, 어떤가?
-내 삶을 가지고 성소수자 삶이 어떨 것이다 추측하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나는 되게 운 좋은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사는 사람은 정말 얼마 안 된다. 부모님께 이미 커밍아웃했는데 괜찮고, 나를 자를 사람 없고, 먹고살 걱정 없고. 이런 사람은 되게 드문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EBS ‘까칠남녀’에서 잘렸다고 볼 수도 있는데,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나조차도 그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은하선’ 개인 이미지나 활동으로 여자, 딸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파트너랑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친한 언니랑 같이 살고 있다고 가족들에게 오랫동안 얘기해왔다. 그럴 때 항상 결혼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언제 결혼할래”, “요즘 만나는 남자 없냐” 이런 식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을 때마다 굉장히 불편했다. 당연히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내 의견을 밝혔다. 남자와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성소수자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결혼했을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는 불편하다고 얘기를 해도 못 받아들인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그렇게 살아오는 게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깨부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다양한 성담론 등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성폭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실 사회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무엇이 강간이고 무엇이 섹스인지를 명확하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어디를 어떻게 만졌대?”하면서 굉장히 포르노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젠데 욕망, 성욕의 문제라고 받아들인다. ‘성욕 해소를 위해서, 성욕을 참지 못해’ 이런 이야기들이 성폭력 사건에서 같이 나가는 상황일 정도로 한국 사회는 성폭력과 강간, 성폭력과 섹스 자체를 구분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분들은 내가 말하는 걸 보고 “나는 아직 얘기하기 너무 불편하다. 내가 트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아직 너무나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시키는 것, 본인이 본인을 기다려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생각보다 빠르게 못 갈 수도 있다. 그랬을 때 주변에서 뭐라고 닦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게 너무나 명백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창피해 하지 마, 섹스에 대해 이야기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다.
 
▲섹스칼럼리스트,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자유로운 성담론을 펼친다. 쉽지 않을 텐데?
-섹스 칼럼을 쓰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거다. 나는 글을 계속 쓰던 사람이었고, 그 중에 섹스에 관해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컸다.

여성들이 쓰는 섹스 칼럼이 2009년도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영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는 것과 동시에 섹스에 대해서 얘기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또 페미니즘적으로 섹스에 대해서 얘기하는 담론이 많지는 않았다. 어떻게 남성을 유혹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발칙한 여성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된 성담론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섹스란 주제를 가지고 페미니즘적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호응이 나쁘지 않았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 이런 얘기도 있었다.
 
▲여성이면서 성소수자, 성폭력 피해자인데. 최근 미투 운동을 보며 든 생각은?
-얼마 전에 “이러다가 무고 하나만 떠도 이 운동은 죽는다”고 얘기하는 걸 봤다. 익명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에 대해 사람들이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 말을 지어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모두 꽃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누구 하나 걸려봐라, 저 중에 한 명은 꽃뱀 같은 애가 있을 것이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얼마나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일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럴 거면 신고해라”라거나 “법적으로 대응하지 굳이 왜 이런 걸 하냐”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대응했을 때 얼마나 복잡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끔 여성들이 차별받는 것이 뭐가 있느냐고 이야기하거나 여성으로 사는 것이 힘든 게 무엇이 있냐고 할 때마다 강간율이나 언어폭력 피해율을 이야기하면 “그렇게 센 거 말고 일상에서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해라.”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을 엄청나게 괴물 같은 사람이 벌인 굉장히 사소한 일, 굉장히 작고 드문 일 정도로 취급하는데 사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지금은 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인 공작이라든지, 분명 꽃뱀이 한 명은 있을 거라든지, 분명히 무고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받아들이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나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피해를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본인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관해 얘기했을 때 특이한 애로 찍히는 게 큰 거 같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애, 특이한 애. “쟤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해”, “쟤 앞에서는 입조심해야 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인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몇 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 해서 사회가 바뀔 것 같지만 바뀌는 건 되게 더디다. 많은 여성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느리게 바뀌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낄까 걱정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고, 방송에서도 한 적이 없는 ‘까칠남녀’ 같은 젠더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정말 빨리 바뀔 수도 있겠구나”하는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다. 기대감을 갖는 건 좋지만 기대가 생각보다 자신의 기대가 미치지 않을 때 그만큼 많이 상처도 받는다.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빨리 지칠까 봐. 막 달리다가 생각보다 변하지 않는 사회에 맞닥뜨려서 너무나 상처를 입을까 봐. 생각보다 긴 싸움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상처받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