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 최대주주 등극…‘자동차 굴기’가속화

볼보, 로터스, 프로톤에 이어 이번에는 다임러마저 삼켰다. 2010년 이후 해외 유수의 자동차업체를 인수해 온 중국 ‘지리자동차(회장 리수푸)’가 최근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모(母)기업인 다임러의 최대 주주가 됐다.

업계는 자동차 기업에 대한 중국의 국가적·전략적 지원과 함께 진행되는 ‘중국 자동차 굴기’의 일환이며 지리자동차의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보고 있다. 지리자동차의 영토 확장이 점점 빨라지면서 국내 업체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다임러 지분 9.69% 취득…쿠웨이트 정부펀드 지분 넘겨받아
“(이번 제휴로)테슬라·구글·우버에 대응”…업체 영향은?

중국 매체 신화망 등에 따르면 지리자동차 측은 독일 다임러 지분 9.69%를 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9조7000여억 원에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다.
다임러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메르세데스-벤츠, 스마트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다임러 측은 “다임러의 미래에 대한 혁신과 전략에 확신을 가진 장기 투자자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리자동차는 이번 주식 취득으로 쿠웨이트 정부펀드가 보유한 다임러의 최대 주주 자리를 넘겨받았다.

9조7천여억 원에 매입

지리자동차 측은 당분간 지분을 더 늘릴 계획은 없다면서 대신 다임러와 제휴를 강화해 테슬라와 구글, 우버 등에 대응해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 개발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리자동차의 리수푸 회장은 “친구들 없이 외부 침입자들에 대항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자동차 메이커는 없다”면서 “공유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며 다임러에 대한 나의 투자는 이런 비전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앞서도 지리자동차는 2010년 미국 포드로부터 볼보 승용차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볼보 트럭과 버스를 만드는 볼보AB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최근 지리자동차는 유럽의 최대 행동주의 투자가인 세비안 캐피탈로부터 볼보AB 지분 8.2% 전량을 매입했다. 정확한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약 32억5000만 유로(약 4조1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장의 평가 가치 대비 20% 이상 프리미엄을 얹은 수준이며 이번 인수로 지리자동차는 볼보AB의 의결권 15.6%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볼보AB는 지난 1999년 승용차 사업부를 미국의 포드 자동차에 65억 달러에 매각한 이후 볼보 승용차와 상용차 부문의 소유 구조가 분리된 상태다.

협력 관계 따라 희비 엇갈려

지리자동차의 영토 확장으로 국내 업체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쏠린다. 업체 간 치열한 진영 다툼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는 리 회장이 다임러 최대주주로 올라선 만큼 협력 관계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기업으로는 만도가 꼽혔다. 만도는 자동차 부품업체로서 첨단 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등을 만들고 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만도는 지리차에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등을 공급하고 있다”며 “그동안 두 회사 간 ADAS 부문 협력 강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지리차가 독일 업체와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다”면서 “이 경우 일반 부품 공급사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온시스템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리 회장의 다임러 투자는 중국 내 벤츠의 위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덕분에 벤츠 판매가 증가한다면 관련 부품을 공급 중인 한온시스템에겐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리차가 볼보차를 인수하자 중국 판매량은 2012년 7450대에서 지난해 9만1052대로 크게 증가했다.

홍콩 거래소에 상장된 지리자동차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전 세계 자동차기업 중 가장 빠른 주가 상승세를 보인 것.
지리자동차 주가의 고공행진은 거침없는 인수합병, 우수한 실적, 성장 가능성,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편 1986년 전자업체로 출발한 지리자동차는 1997년 자동차 생산을 개시한 뒤 2010년 미국 포드차로부터 볼보 승용차사업을 18억 달러에 인수해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했다. 지리자동차는 지난해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인 로터스 지분 51%, 말레이시아 국민차 회사 프로톤의 지분 49.9%를 사들였다.

지리자동차는 최근 상용차와 양산형 승용차는 물론 프리미엄과 럭셔리 승용차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브랜드 다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볼보AB의 지분 인수와 벤츠의 지분 인수는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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