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급여 현혹 당해 2000만 원 이상 빚진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1월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2642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5만3000명 증가한 수치다. 반면 실업자 수는 102만8000명으로 1년 전 101만2000명보다 1만6000명 증가했다. 이는 실업자 통계가 바뀐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이며, 2016년에 이어 2년 연속 100만 명을 넘긴 상황. 이러한 형국에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가 횡행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 적발 사례도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안 그래도 각박한 사회에서 취준생을 두 번 울린다는 원성이 들린다.
 
계약 일사천리···‘해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
영업용 번호판 없어 단속 대상, 취업 사기 보이스 피싱도


‘OO택배 신입사원 모집, 월 450만 원, 근무시간 오후 6시까지.’

최근 한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택배기사 구인광고다. 이 광고에는 ‘면접은 본사에서만 진행한다’ 등의 문구가 포함돼 있다. 문구만 보면 회사에서 직접 채용을 하는 것처럼 읽히지만 택배기사 A씨는 몇 달 전 이와 유사한 구인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다가 쓴맛을 봤다고 토로했다.

A씨는 “안내된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택배회사가 아닌 물류회사로 연결됐다. 광고에는 월 500만 원은 벌 수 있다고 써 있었으나 실제 일을 하고 있는 기사들의 급여명세서를 보여주면서 ‘못 벌어도 300만 원, 잘 버는 사람은 600만 원 이상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대신 1500만 원짜리 트럭을 사야 하고 냉동 탑차로 개조하는 비용 1200만 원까지 (총) 27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계약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됐다. 빼곡히 쓰인 계약서는 A씨가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회사 직원이 빠르게 읽고 넘어갔다. 모자란 돈은 회사에서 알선해 준 캐피탈 회사에서 빌렸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차를 샀다는 것, 굳이 냉동 탑차로 개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실제로 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개조비용 1200만 원 중 500만 원 이상이 회사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떼가는 수수료였다.

신선제품의 경우 여름에도 얼음 포장 상태로 배송돼 냉동 탑차가 필요 없을 뿐더러 냉동 기능을 위한 부품이 상당한 부피를 차지하다 보니 적재량도 적어졌다. 무게가 무거워 기름값도 더 들게 됐다.

극심한 취업난에 택배업계로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회 초년생들의 등을 치는 수법도 횡행하는 상황.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게다가 계약을 신속하게 진행해 해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차 값을 부풀리거나 불필요한 개조 비용을 내게 해 빚을 지우는 방식이다.

이러한 수법에 당한 것은 A씨뿐만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 ‘택배 지입 사기’를 검색해보면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의 하소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들 중에는 본인을 20‧30대라고 밝힌 이들이 적지 않다.

한 택배회사의 지입 기사를 했었다는 B씨는 블로그 글을 통해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공기업을 앞세워 공기업과 계약이 체결된 것처럼 광고를 하는 회사들이 있다. 그리고 서울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뒤 바로 대출을 유도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게 한다”고 썼다.

B씨 글에 따르면 일반적인 택배회사의 경우 회사면접→배송 지역 확인 및 소장면접→물동량 갯수·개당 단가 확인→차량 연식·차량가 확인 후 캐피탈 대출→위수탁계약서 작성→현장 투입 순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일부 ‘택배 지입 사기’를 하는 곳에서는 배송 지역 확인과 소장면접 없이 차량 계약금부터 받는다. 또 영업용 차량번호, 흔히 말하는 ‘노란 번호판’이 없는 상태에서 면접 당시 약속했던 지역과는 다른 지역으로 속칭 ‘뺑뺑이’를 돌린다고 한다.

B씨는 “회사에서는 영업용 번호판에 대해 ‘3개월 뒤에 달아주겠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A씨도 회사에서 ‘영업용 번호판을 달려면 기본 1~2년은 일해야 한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취업을 한 차주(車主)는 영업용 번호판이 없어 단속 시 벌금을 지속적으로 물 수밖에 없는 상황. 또 회사에서 약속했던 지역이 아닌 타 지역에서 일을 해 단기간에 그만 두는 일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결국 차주는 차량에 대한 원금 회수도 못한 채 2000만 원 이상의 손해를 보는 것이다.

박대희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은 온라인 광고를 보고 A씨처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새 차를 뽑아도 적재공간을 손보는 공임비를 따지면 2000만 원 이하로 충분한 수준인데 냉동 탑차는 공임비가 더 들어가다 보니 회사가 중간에서 돈을 남기려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인광고 자체도 (택배회사인 것처럼 사칭했다면) 허위광고에 속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구인광고에 적힌 임금이나 노무관계, 노동시간 등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취업준비생 등 68명이 보이스 피싱을 당해 총 5억60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빼앗긴 사례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퀵서비스 업체와 짜고 취준생 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의 국내 총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총책 C씨 등 7명을 사기방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퀵서비스업체 사장 D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월 17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8개월 동안 대포통장 41건을 유통해 피해자 E씨 등 68명으로부터 5억6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8개월이 아닌 8일 동안 피해규모가 이 정도”라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다.

경찰에 따르면 총책 C씨는 10년 이상을 퀵서비스업에 종사한 일명 ‘베테랑’으로 업체 사장 D씨와 대포통장을 배달 할 때마다 웃돈을 얹어 주기로 사전에 모의했다.

이들은 주로 구인구직사이트 등에서 개인정보를 확인한 뒤 기업 콜센터로 위장해 “취업 축하한다. 퀵을 보낼 테니 급히 월급 통장을 보내 달라”면서 취준생들을 속여 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사나 경찰, 금융사를 사칭하거나 “당신 자녀가 빚보증을 섰는데 이를 갚지 않으니 납치해 장기를 떼어 팔겠다”며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C씨가 대포통장을 입수하면 D씨는 배달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나눠, 한 건 평균 2만 원 정도 퀵배달비의 세 배에 달하는 5~7만 원의 ‘웃돈’을 받고 피해자들의 통장을 C씨가 원하는 곳으로 배달했다.

이들 조직은 계좌이체 대신 국내에 정상적으로 체류 중인 중국이나 동남아 현지인들에게 돈을 주면 현지 조직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식의 환치기 수법을 사용했다.

금감원은 취업에 합격했다며 업체가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을 요구하는 경우 100% 보이스피싱임을 강조했다.

특히 타인에게 통장 등을 대여하거나 양도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고, 본인의 계좌에서 피해금을 인출해 사기범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인출책으로서 민·형사상 책임이 따를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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