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국가기관 신뢰도 항상 꼴찌 내심‘환영’
- 국민들 냉소·조롱 ‘배부르게’ 먹는 존재

 
#(이웃)직장 어디세요?
#(나)여의도입니다.
#(이웃)여의도? 은행이나 증권사?
#(나)아뇨, 국회에서 일해요
#(이웃)오~ 그래요?
 
애들 때문에 친해진 동네 엄마 아빠들도 필자가 국회에서 일하는 걸 모른다. 우리의 주관심사는 애들이니까. 우연한 기회에 서로 하는 일을 묻게 되었고 대답했더니 반응이 저랬다. 동네 친구들뿐 아니라 어디에서건 국회에서 일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뜻하지 않게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반응들이 다들 비슷하다. “그래요?"라고 반문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라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 국회도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고 나에게는 직장일 뿐인데 뭐 그리 의외란 것일까? 국회에서 일할 것 같은 사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국회선진화법으로
‘강호무림’에서 벗어나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회적 장치다. 먹고사는 이해관계가 날카로운 세상에서 이 문제를 법 절차와 수단을 통해 조정하는 곳이다 보니 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사람들은 국회가 싫다.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국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강호무림이었다. 이단옆차기가 날고 명패를 던지고 몸싸움도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그런 국회를 좋아하는 것은 품격이 떨어지는 일이긴 하다.
 
국회 선진화법이 길들인 지금 국회는 좀 다르다. 국민들은 현재 국회를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 같다. 국회를 비판하면서 첫머리에 나오는 뉴스가 '민생입법이 늦어지고 있다'이기 때문일까. 국회의 생산성은 노동 생산성과 다르다. 노동 생산성은 인풋과 아웃풋, 노동투입량지수 대비 산출량으로 측정되지만 국회의 생산성을 측정할 장치는 뚜렷하게 없다.
 
국회의 생산성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는가에 달렸다. 국민들이 느낄 국회의 생산성은 '국민의 기대'와 '부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사이의 괴리처럼 막연하기만 하다. 욕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국회는 국가주요기관 신뢰도에서 항상 꼴찌다. 국회 신뢰도는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법원이나 우병우의 사병노릇을 했다고 비판을 든는 검찰보다도 낮다. 심지어 국민들은 국회보다는 최순실 패거리에 순종한 행정부를 더 신뢰한다. '정치 얘기'는 자리를 가려서 해야 할 것에 속하고 '정치인'은 욕 먹는 일에 익숙하다.
 
오죽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시면 이 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입니다"라고까지 말했을까.
 
하지만 당연히 모든 정치인들이 정치혐오를 선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혐오는 무시되거나 이용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좋은 선물이다. 정치가 국민들에게서 멀어질수록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감시자가 줄어드니까. 능력과 덕망을 갖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꺼릴수록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경쟁자가 줄어드니까. 혐오하는 정치인들이 오래오래 해 먹게 내버려 두는 것이 정치혐오다. 국민들의 정치혐오가 깊어질수록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가는 도로는 정체되고 그들만의 성벽은 견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강준만은 정치혐오가 ‘학습된 무력감' 때문이라고 했고, 유시민은 정치가 욕 먹는 것이 ‘정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가 욕을 먹는 이유는 국민들 보시기에 무능한 면도 있지만 누군가가 조장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국민들이 정치를, 국회를 욕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정치가 국민들의 냉소와 조롱까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먹고살 여유 되고 세상사에 관여할 기회가 보장된 사람들은 국회를 다른 태도로 대한다. 법안 하나 하나에 민감하고 국회에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정치인을 보좌하는 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보면 정치혐오가 국민스포츠가 되는 것은 걱정되는 일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미워하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 미움에 근거가 없지 않지만 다분히 의도된 것이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이익을 본다고 믿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정치의 계절...
참여가 최대 ‘감시’ 무기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오는 6월 13일이면 지방자치 선거가 열리고 국회보다 더 중요한 정치의 장이 열린다. 정치는 외면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을 더 무서워 한다는 것만 잊지 말고, 거리에서 인사하는 후보들을 만나실 때 손에 쥐어주는 명함을 한번 들여다보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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