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경계해야
- ‘미투 운동’,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저항 운동’돼야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3월 8일 미국에서는 노동현장에서 숨진 여성노동자들을 기리며,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참정권 등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는데, 빵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의미했고, 장미는 남성과의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엔은 이를 기념하여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였고, 1977년부터는 3월 8일을 특정하여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하여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 20일,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이 수록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3월 8일을 ‘여성의 날’이자 법정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여성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뒤, 첫 기념행사가 어제 있었다. 지난 1월 29일 현직인 서지현 검사가 JTBC에 직접 출연해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투(Me Too)운동은 연극, 연예 등의 문화계, 체육계, 문학계, 정관계를 막론하고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물결을 형성하며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러한 미투 운동의 힘이 결집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저항 또한 집요하고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며, 2차 가해자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1조 1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미투 운동의 정당성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어제 ‘여성의 날’ 기념행사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미투(Me Too)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의미의 위드유(With You)였던 것이다. 어쨌든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뒤의 첫 번째 기념행사에서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을 불문하고 미투 운동, 그리고 위드유 운동에 모두 함께하겠다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적어도 어제만큼은 우리정치사회의 대세가 미투 운동과 위드유 운동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가장 충격적인 폭로는 지난 월요일 역시 같은 JTBC에서 있었던 김지은 씨의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에 의한 성폭행 폭로였다.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현재 우리 사회의 여성의 지위를 대변하는 것이었으며, 국민들에게 자신을 지켜 달라고 애원하던 떨리는 목소리는 정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였다.
 
피해자인 그녀가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인 안희정 전 지사는 측근을 동원하여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가장 공격적인 어조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권력구조가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안희정 지사는 그 발언에 대해 취소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미 그것으로 안희정 지사는 김지은 씨에게 2차 피해를 입힌 것이다.
 
이틀 뒤에는 BBK저격수로 잘 알려져 있고,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맞섬으로써 옥살이까지 한 정봉주 전의원이 성추행을 했다는 현직기자의 폭로가 이어졌다. 프레시안이 보도한 인터뷰 내용은 현직기자가 대학생시절에 정봉주 전의원으로부터 당했다는 성추행 사실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일단 정봉주 전의원은 이에 대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다툼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연말 정치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사면복권함으로써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도 어려워진 것 같고, 서울시장 자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필자가 안희정 전 지사와 처음으로 이야기해 본 것은 2008년 12월 말경이다. 4월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서 당선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았던 때였고, 폐족을 자처했던 그는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되어 정치적으로 부활해 있었던 때였다.
 
그에게 서울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정치는 고향에서 하겠다며, 상대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했던 서울을 마다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결국 그는 2010년 충남도지사로 당선되었고, 충청권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정봉주 전 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한마디로 꾀돌이였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풍부한 상상력은 현직 국회의원 이상의 영향력을 여의도에서 발휘하고 있었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있던 민주당이 그를 품기에는 오히려 그릇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그가 수감되기 직전에는 그의 인터넷 팬 카페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의 회원이 하루에 5-6천 명씩 늘어나고 있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는 식스팩과 봉도사,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정치권에 컴백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You Too, Brutus!”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카이사르가 자신에게 비수를 꽂은 원로원 의원들 중에 자신이 아끼던 브루투스가 있음을 알고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이다. 물론 정사에는 이러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브루투스 너마저도!” 쯤 될 것이다. 세계 역사 속에 배신의 아이콘으로 브루투스가 각인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대사다.
 
안희정과 정봉주에 대한 미투 폭로를 보면서 “You Too, Brutus!”가 생각난 것은 그만큼 배신의 강도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희정 너마저도!”, “정봉주 너마저도!” 어쩌면 더 많은 유투(You Too)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충격을 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충격은 반대로 미투 운동이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정도의 충격은 마땅히 감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미투 운동은 고전적인 의미의 남성과 여성 힘의 불균형에 따른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와 현대적 의미의 권력 또는 권위의 위계에 따른 권위적 폭력의 결합에 대한 저항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미투 운동은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저항, 혹은 권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미투 운동, 위드유 운동은 수천 년 간 우리 인류를 지배해 왔던 성폭력에 의한 지배라는 낡은 체제를 극복하고, 인류보편의 인권에 기반한 새로운 체제로 전환(Switch)하는 미투 운동, 위드유 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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