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대선 ‘성공의 덫’에 빠진 홍준표 대표
- ‘소망적 사고’ 벗어나 실제의 여론 지형을 살펴야

 
이번 주엔 유달리 놀라운 이슈가 많았다. 월요일인 5일엔 집권여당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 가해자로 방송에 등장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방송 시작할 때 현직 지사였던 이가 몇 시간만에 사임 의사를 밝히고 당에서 제명당했다.
 
이에 그간 ‘미투’ 운동에 미온적이던 한국당 여성 의원들이 다음 날인 6일 ‘미투’ 운동 동참을 외치기에 이른다. 목요일인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기에 이번 주는 이 이슈에 이목이 집중될 듯했다. 시민들의 단톡방에 각종 찌라시가 돌았고 미투 열풍이 본격적으로 여의도 정가에 상륙하리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런데 다음 날인 6일에는 대북특사에 의해 북한 측의 여러 제안이 발표된다. 핵심은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협상에 참여할 수 있으며, 4월에 판문점 남측 영역에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인상적이었는데 9일에는 특사들이 미국에 가서 5월에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김정은의 뜻을 전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락해 지방선거 전 4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이, 5월에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생겼다. 남북정상회담은 성사된다면 세 번째이며 남측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회담이 되지만, 만일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사상 최초다. 놀랍게도 보수파 유권자는 물론 중도층에서도 회의적 시선을 보냈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일단은 힘을 받게 되었다.
 
한국당, ‘미투’ 유리하고
대북 훈풍 영향력 없어?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지방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설왕설래다.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미투운동이나 안보 이슈 모두 결코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슈지만 선거 앞둔 정당에겐 그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유독 한국당 인사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눈에 띈다. 안희정을 지사에서 사임시키고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연기시킨 여의도 미투 열풍은 본인들에게 유리하다 보면서도, 남북정상회담 국면은 별로 영향이 없을 거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별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해당한다. 실제로 9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3월 첫주 정례 여론조사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1%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주부터 7%포인트 상승한 수치이며 두 달 만에 70%대로 재진입한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건도 물론 영향을 미쳤겠으나, 그럼에도 이 정도 수치가 나왔다.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보여준 9일의 발표는 아직 반영도 안 된 수치다.
 
물론 지방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 ‘안희정 쇼크’는 민주당이 어제까지만 해도 지방선거에서 응당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충남도지사 선거를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쇼크가 대전·충북·세종 등으로 번진다고 생각한다면 한국당에겐 서광이 비치는 느낌일 것이다. 부산·경남 공략이 어려워지고 인천을 장담할 수 없다면 한국당이 확보할 수 있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숫자는 17군데 중 최대 10군데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구의 절반가량이 거주하는 수도권에서 한국당 약세를 가리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특유의 착시효과가 있다. 소망적 사고의 최대치인 10군데가 성취될지도 의문이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선거의 약세는 남는다.
 
이를테면 서울과 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이번에 한국당이 어느 정도 쓸려 나갈지는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이 지난 대선 이후 사실상 보수 유권자층으로 확실히 이동하고 바른정당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이 출범하면서 정국은 1여다야의 구도가 되었다.
 
더구나 2016년 4월 총선 전 국민의당과 결별하고 대선을 거치면서 지난 2년간 다져온 민주당의 지역 당조직이 단단하다면, 2016년 탄핵 국면에서 분당하고 여러 모로 어수선했던 한국당의 조직은 매우 헐거워져 있다. 한국당 계열 정당의 당조직이 민주당에 비해 이 정도로 허약했던 선거는 전례조차 없다.
 
현재 한국 사회의 지방선거 룰이 민심 향방에 따라 한 정당에 당선자가 쏠리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수도권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에서 과연 한국당에 희망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수도권에서는 2006년 지방선거 열린우리당의 대참사가 역으로 재연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현실 부정 더 힘든
‘고난의 행군’ 시작

 
한국당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망을 부정할 것이다. 홍준표 대표는 연초부터 갤럽 등 여론조사기관의 발표조차 믿을 수 없다고 공박했다. 가장 응답률이 높은 갤럽조사 결과를 불신하면서 ‘응답률이 낮은 조사를 어찌 믿느냐’고 말했다.
 
그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사막 한가운데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본인들을 구원할 ‘샤이 보수’를 기다린다. 여론조사 기관 사람들도 당연히 응답을 회피하는 ‘샤이 보수’는 있다고 본다. 그래 봐야 5~10%를 좌지우지한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율이 긍부정 이슈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여론조사가 조작이라 본다면 선거 전략은 구성할 수조차 없다.
 
홍준표 대표는 어쩌면 ‘성공의 덫’에 빠진 것 같다. 정당 전체가 일패도지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나서 전열을 정비하고 어떻게든 전열을 추슬러 24.0%로 2위를 차지했던 대선의 기억이 아직 선명한 것 같다. 그때의 선거 전략은 짧은 시간 안에 흩어진 핵심 지지층을 규합하는 데 적절했을 뿐인데,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한국당을 재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을 향해 난사된 말들이 당장은 우리 편에게 카타르시스를 줄지언정 결국에는 타당성을 검증받고 발화자에게 되돌아온다. 한국당의 지금 처지는 지난 대선 때 홍준표 대표가 ‘막말’로 퍼트린 채권과 어음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같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도 유권자들에겐 지난 대선 홍준표의 기억만이 선명하다.
 
더구나 지속적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어법을 구사하니 문재인 정부의 노선에 불만을 가졌지만 점잖은 성향의 보수파 유권자들이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의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야 현실을 직면하게 되겠지만, 그때부터 상황을 수습하려면 한국당에겐 훨씬 힘겨운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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