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폭탄’ 무역전쟁 부른다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며 ‘관세폭탄’을 꺼내들자 유럽, 중국, 캐나다 등 주요 교역국들이 곧바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들먹이며 맞대응에 나섰다. BBC 방송 등 외신은 지난 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은 미국산 철강과 농산물은 물론이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처럼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들에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적용할 예정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대서양을 사이에 둔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EU는 이들 업체를 표적으로 삼아 강력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 산업이 유럽 내 수 천 개 일자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당한 조처로 공격을 받는 것을 멍청하게 앉아서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무역 당국자들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약 35억 달러 상당에 25%의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35억 달러는 유럽 철강·알루미늄 업계가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로 입게 될 손해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EU가 수많은 미국산 제품들 가운데 유독 할리데이비슨·버번·리바이스를 콕 집어 보복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 유력 정치인들을 압박해 이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말리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는 미국 공화당 서열 1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에서 생산된다. 버번 위스키는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의 지역구인 켄터키의 대표 상품이다. 

리바이스는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EU는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수입 철강에 대해 3년 시한의 세이프가드 조처를 발동했을 때도 버번 위스키와 오토바이 등에 대한 보복관세를 압박 카드로 꺼낸 적이 있으며 결국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세이프가드를 철회했다. 한편 중국은 미국 농산물을 겨냥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폭탄 발표 전 이미 콩 등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미국산 수수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대미 철강 수출 1위 국가인 캐나다도 반격 가능성을 시사해 놓은 상태다.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가 던질 관세 폭탄으로 미국도 해를 입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역 전쟁으로 미국산 제조업 제품뿐만 아니라 오렌지와 쌀 같은 농산물의 수출도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많은 농촌 지역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YT는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인디아나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미국 주들은 무역 전쟁으로 인한 충격이 가장 클 것"이라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과는 러스트벨트(Rust Belt)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다른 제조업 지역에는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 표를 몰아준 러스트벨트는 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다. 가동이 중단돼 공장설비에 녹이 슬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동부 뉴욕주와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아이오와, 위스콘신 등 중서부와 중북부 주들이 이에 해당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되풀이하여 발견되는 정치적 행태 하나는, 대통령이 보수적인 원칙을 저버리겠다고 위협하면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제발 그러지 말라며 대통령을 설득하고 나서는 것이다. 트럼프가 불법 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 폐지를 결정하면서 의회가 대체 입법을 마련해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이민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서자,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은 트럼프에게 당초의 강경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트럼프가 총기규제 강화 방안을 들고 나오자 전미총기협회(NRA)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트럼프의 방침에 반발했고, 공화당 지도자들은 총기 규제 강화에 관한 신속 표결을 연기함으로써 NRA를 지원했다. 

하지만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추가 관세를 각각 25%와 10%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이번 조처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도부가 맥을 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기습적으로 내놓은 발표에 자유무역을 주창해 온 공화당 지도부가 별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뿐만 아니라 무역을 관장하는 상임위원회들을 이끄는 케빈 브래디 하원의원과 오린 해치 상원의원도 트럼프에 반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의 무역 관련 강공(强攻)을 누그러뜨리려는 공화당 의원들과 그의 일부 보좌관들의 노력에 퇴짜를 놓아 왔다. 그런데 공화당 지도부는 입법부 차원에서 트럼프의 ‘세금폭탄’ 질주를 봉쇄할 의지가 없거나 그러기에 필요한 지지 의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지도부는 공화당이 성사시킨 감세(減稅)의 경제적 이득을 갉아먹을 무역전쟁을 두려워한다. 감세는 공화당이 오는 11월의 중간선거에서 대형 손실을 피하기 위해 의존하고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워싱턴 정가(政街) 분석가들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는, 철강·알루미늄 추가관세 부과를 연기하거나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추가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것임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백악관이 트럼프의 세금폭탄 발표를 완화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기는커녕 그는 일련의 트윗을 통해 그의 결정을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기기 쉬운 것”이라며 무역전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미국과 더불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가입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나프타 재협상에 동의해야만 철강·알루미늄 추가관세는 없었던 것이 될 것임을 거듭 밝혔다. 이처럼 트럼프가 버티는 가운데 라이언 의장 진영은 더 대립적으로 나갔다. 라이언의 대변인 애쉴리 스트롱은 성명에서 “우리는 무역전쟁의 후과(後果)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며 백악관이 이 계획을 밀고 나가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라이언 진영의 이런 비판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자 트럼프는 5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아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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