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출신 김재식 부회장 영입, 포트폴리오 전력


유진그룹은 지난해부터 ‘중형 세단’ 제작 작업에 한창이다. 유진그룹의 중형차 프로젝트는 ‘건설-금융-물류’로 짜여진 중견그룹 사업구조다. 올 들어서는 내외관 작업인 금융-물류 사업 부문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정작 중형세단을 움직일 엔진은 미완성 단계다. 눈독을 들인 대우건설과 극동건설의 인수 작업에서도 두 번의 쓴 맛을 봤다.
두 번의 쓴 맛을 본 유경선 회장은 지난 5월 그룹의 엔진작업 밑그림을 그릴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재식 전 삼성SDI 부사장을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영입한 것이다. 김재식 부회장은 삼성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끄는 등 경영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경제계에서는 유진의 중형세단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진은 지난 1969년 망원동에 위치한 영양제과에서 출발했다. 1976년 부천제과공장을 건립, 건빵을 생산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세를 시작한다. 창업주인 유재필 전 회장은 성장 여력을 신규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영양제과가 그룹 모체

1979년 유진종합개발과 1984년 유진기업을 창립, 본격적으로 레미콘 사업에 진출했다. 유진은 늦게 진출한 레미콘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입지와 근접성의 특성을 살린 전략을 구사한다. 1989년 부천레미콘 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수도권 인근 공장의 권역 네트워크화를 추진, 공급 거점기지를 구축한 것이다.
1990년 당진공장·수원공장, 1992년 남동레미콘공장, 1995년 남양주 공장·광주공장 설립 등을 통해 생산량을 확대했다.

또 인천과 수원, 부천 등 수도권을 아우르는 광역화를 추진하고 공장 물류 시스템 공유와 확장으로 국내 레미콘 시장을 석권했다.
유진은 사업 구조가 레미콘으로 재편되면서 콘크리트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1996년 인천에 모래부두를 설립, 시멘트와 모래 골재를 직접 생산 조달하는 일괄체제를 갖춘다.
1990년대 말부터는 미디어 사업부분 진출을 시작했다. 케이블 방송국인 드림씨티방송을 설립했다.

또 지난 2003년 11월 유진은 ㈜MBC프로덕션과 함께 이엠미디어를 세운다. 이엠미디어는 현재 국내 최다 60개 디지털 오디오 채널을 보유하고 방송 프로그램 외주 제작, 공연 및 전시 기획·제작·투자 등 활동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유진은 건설소재, 건설, 금융, 미디어, 제과로 나눠져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그룹 총 자산은 1조120억원이다. 연 매출은 7080억원 수준이며 경상이익은 1543억원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유진이 콘크리트 사업 이외 다른 사업부문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사세 확장에 가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6년 간 경상이익 규모를 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최고 600여억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난해 16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자산규모도 지난해 1조원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매출액은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1년 3000여억원, 2002년 5000여억원, 2003년 6000여억원 등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에는 8000여억원을 돌파하면서 1조원대 매출 규모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액이 7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또 매출액 구성비율을 보면 콘크리트와 시멘트 등 건설소재 부문이 86.2%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소재와 연결되는 건설부문은 10.5%에 머물고 있다. 다른 부문은 3.3%에 불과한 실정이다.
건설소재 사업의 수직계열화에는 성공했지만 건설과 건설소재의 수직계열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M&A시장 진출 박차

“30대그룹의 도약 기반을 마련하겠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올 신년사를 통해 그룹 확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유 회장은 “성장하던 기업이 대기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많았다” 며 “올해를 그룹의 중흥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 회장은 신년사에서 그룹 성장을 강조하는 등 사업 확장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이는 현재의 사업 구조로 기업 성장을 이끌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1997년과 2001년 설립한 드림씨티 방송과 브로드밴드 솔루션 매각을 결정했다. 미디어 사업 확장에 대한 계획을 접은 것이다.
경제계에서는 당시 유 회장이 현재의 태광산업, CJ 등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유진이 준비한 카드는 ‘건설-금융-물류’로 압축하는 포트폴리오였다. 유진의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미디어사업 철수와 함께 본격화됐다.
첫 번째 시도는 지난해 대우건설이라는 거대한 빅딜이었다. 당시 대우건설 매물은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도 인수후보로 나서면서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유 회장은 예비입찰에서 3조3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제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대우건설을 인수 건설사업 수직계열화를 통해 2~3년 이내 10조원대의 매출 규모 기업으로 키운다는 복안을 내세웠지만 본 입찰에서 금호그룹에 밀려 탈락했다.
유 회장의 기세는 빅딜 실패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같은 해 7월부터 서울증권 강찬수 회장의 자사 지분 9.85% 인수와 보통주 공개 매수를 통해 서울증권을 품에 안았다.
올해에는 물류업계 진출도 성공했다. 국내 5위 규모의 로젠택배를 인수한데 이어 최근에는 제2기 로또 사업자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금융과 물류사업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올해 찾아온 건설부문 완성을 위한 두 번째 기회도 쉽지 않았다. 매물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최대주주로 있는 극동건설이었다. 매각 입찰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의사를 밝혔다. 유진그룹과 STX, 효성, 웅진, 한화, 대한전선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증권계에서는 대우건설 입찰과정에서 막대한 실탄을 내세웠던 유진그룹과 웅진그룹, STX를 빅3로 꼽았다. 그러나 웅진그룹이 4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던 매각금액보다 2000억원이 많은 6000억원을 써 내면서 유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삼성맨 영입 히든카드 이유는?

경제계 일부에서는 유진그룹의 건설부문 인수합병에 대한 잇따른 실패 이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분석은 지난 5월 이뤄진 김재식 전 삼성SDI 부사장의 영입이후 나왔다.
유진그룹 프로젝트에 대한 예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숨고르기다. 현재 갖춰진 내외관부터 내실을 다진다는 분석이다. 삼성 출신인 김재식 부회장을 중심으로 빅그룹의 경영체계를 갖춘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안성물류터미널에서 열린 로젠택배 2007년 하반기 경영목표 달성 및 원가절감 결의대회에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이익기반의 구조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열린 서울증권 비전 선포식에서도 유창수 부회장이 2011년 영업수익과 자기자본 규모를 1조5000억원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룹 경영이 몸집 부풀리기에서 수익구조 정착을 위한 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말해주는 발언들이다.

내부 관계자들도 지난해부터 추진된 인수합병 작업 때문에 알려진 ‘M&A의 황태자’ 등에 대한 풍문을 경계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매물이 나온다고 해도 경영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난 사업 추진은 없을 것”이라며 “인수합병 움직임은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기되고 있는 예상은 자원개발 등 해외사업 진출이다. 이는 최근 영입된 삼성출신 김 부회장의 뒷배경에 따른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1977년 삼성에 입사,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카자흐스탄에 파견, 쓰러져 가던 카자흐스탄 국영기업인 구리생산업체 카작무스를 정상화 시킨 인물이다.
또 당시 최근 1조원대의 거부로 유명해지면서 뉴스메이커로 등장한 삼성출신 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의 상사였다.

김 부회장은 카작무스 프로젝트 이후에도 삼성물산에서 금속자원부문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현재의 삼성물산을 이끌어낸 성과를 올렸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진이 김 부회장의 경험을 살린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진 실무팀 관계자는 “새로 영입된 부회장의 배경을 놓고 나온 터무니없는 추측”이라며 “현재까지 자원개발 사업과 관련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재식 유진그룹 부회장은 누구?
억만장자 키운 경영능력 보증수표

삼성물산 이사 재직 차용규씨 직속 상사 활약
유진그룹 삼고초려 영입 활동 재개 관심 집중
최근 삼성에 재직하면서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담당했다가 억만장자가 된 샐러리맨의 국내 복귀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다.
삼성물산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점에 근무했던 차씨는 삼성물산이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경영을 위탁받은 구리 생산업체 카작무스를 흑자로 돌려놓는 경영수완을 발휘해 지점장에서 임원으로 고속 승진했다. 2004년에는 삼성물산을 그만두고 카작무스 지분 전량을 인수, 공동대표를 맡았다.
차씨는 이듬해 카작무스를 런던증시에 상장하면서 세계적인 억만장자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올 4월에는 1조원이 넘는 카작무스 지분을 처분, 돌연 잠적한 상태다. 이에 따라 차씨가 1조원대의 자금을 들고 국내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예상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경제인들 사이에서는 차용규의 성공스토리와 함께 또 다른 인물 이야기가 이슈화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까지 삼성 SDI 부사장을 정년퇴임한 후 2개월 만에 기업으로 복귀한 김재식 유진그룹 부회장이다.
김재식 부회장이 카자흐스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이끈 임원이었기 때문이다.
카작무스 성공의 원동력이 실질적으로 김재식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서 나온 것이다. 차용규씨가 샐러리맨에서 억만장자로 유명해진 것도 김재식 부회장의 리더십에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인 셈이다. 김 부회장은 1995년 삼성물산 이사로 재직할 당시 카자흐스탄에 파견됐다. 이후 2000년까지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맡았다. 이때 차용규씨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점에 근무하면서 김 부회장 밑에서 카작무스의 정상화를 이끌어냈다.
삼성물산은 1995년부터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통해 한때는 회사 해외법인 수익의 45%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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