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배상 책임은 차주(車主)의 몫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길빵.’ 얼핏 들으면 길을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길빵은 대리운전사를 기다리는 손님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개별 대리운전사를 칭하는 은어다. 이들은 대리운전이 필요한 취객에게 접근해 차주(車主)가 부른 업체의 운전기사라고 속여 핸들을 잡은 뒤 바가지를 씌운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다. 손해 배상 책임은 온전히 차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리운전 업체·운전사, 차주 등 모두에게 ‘암적인 존재’로 불린다.

업체 운전사인척 가장해 취객 노려···‘바가지 요금’은 덤으로

대리운전은 비용을 내고 운전기사를 임시로 고용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따라서 업체를 고를 때는 신중하고 꼼꼼히 따져야 한다.

특히 차주는 목적지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에 소위 ‘길빵’이라 불리는 개별 대리운전사에게 차 키를 맡기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길빵은 대다수가 미보험 대리운전사이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이 필요한 취객에게 접근해 차주가 부른 업체의 운전기사라고 속여 손님을 가로챈다.

또 이들은 차가 밀집해 있는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대리운전이 필요한 취객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차주가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를 했을 때 몇 십 분씩 대리운전사를 기다려야 하는 단점을 이용해 영업을 하는 것이다.

길빵은 차주에게 이른바 ‘바가지 요금’을 씌우기 일쑤다. 이들이 사고를 낸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금감원, 길빵 사고
보험 인정 안 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대리운전 이용자의 보호 강화를 위해 지난 2015년 ‘대리운전 관련 보험서비스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정 전에는 차주가 대리운전 업체를 통해 소개를 받았어도 대리운전사가 무보험이라면 사고 발생 시 피해자에 대한 인적·물적 피해 전부를 차주가 개인비용으로 배상해야 했다.

개정 후에는 차주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업체를 통해 부른 대리운전사가 무보험 상태에서 사고를 내면 차주가 가입한 ‘운전자한정 특약’에서 추가 보험료 부담 없이 보험회사가 먼저 피해자에게 보상하게 됐다. 이후 보험회사는 대리운전 업체에게 보상금액을 구상(求償)한다.

그러나 이는 길빵 행위가 아닐 경우에만 인정되는 내용이다.

금감원은 개선방안 발표에서 “대리운전 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대리운전 기사(속칭 길빵)의 무보험 사고는 구상이 어렵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향후에도 이용자(차주)의 ‘운전자한정 특약’에서 보상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기 때문.

물론 길빵에 대한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고를 낸 길빵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도로교통법 등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고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은 온전히 차주의 몫이다.
 
대리운전기사
보험 여부 확인해야

 
길빵 행위는 대형 음식점이나 술집 주차관리인이 미등록 대리운전사들과 결탁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대리운전을 부를 때는 본인 또는 함께 있는 지인이 직접 업체에 연락해 운전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전화상으로 미리 통화한 대리운전기사가 아니라면 차 키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일부 주차관리인이 자신의 지인을 대리기사인 척 가장해 차주에게 보내는 사례도 있었다.

이 밖에 일부 길빵은 차량이 훼손되면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술 취한 손님들의 지갑이나 현금 등의 귀중품을 노리기도 한다.

목적지를 모르는 대리운전사라면 앞서 전화를 했던 대리운전 업체·운전사의 번호로 다시 연락해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또 대리운전사의 보험가입 여부 등을 보험증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길빵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돼 온 행위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해야 수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드시 대리운전사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고 자칫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으니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것도 필수”라고 밝혔다.
 
음주한 차주, 운전대 잡으면
대리운전사‧차주 모두 처벌

 
대리운전을 이용한 뒤 운전사를 보내고 음주 상태로 주차를 하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차주에게 추가금을 요구하다 실패하자 음주운전을 방조한 얌체 대리운전사가 형사 입건된 사례도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부 얌체 대리운전기사를 놓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지적을 하는 상황.

지난 2016년 6월 8일 오후 10시 50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씨는 업무를 마치고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 중이었다. A씨 대신 운전대를 잡은 대리기사 B씨. 그는 A씨의 집이 가까워지자 추가요금을 요구했다.

대리 운전비용 문제로 두 사람 간 시비가 일자 B씨는 A씨의 차량을 도로 한복판에 방치하고 내렸다. A씨는 다시 대리기사를 부르기엔 집이 너무 가깝고 비용도 아깝다는 생각으로 직접 운전을 했다.

이를 본 B씨는 경찰에 음주운전 신고를 접수,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79%로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B씨에 대해서도 음주운전 부작위 방조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이 사건 이전까지 비슷한 유형의 사례가 있었으나 실제 형사 입건된 것은 처음이었다. 경찰에서는 B씨의 경우처럼 이른바 ‘얌체’ 행위에 대한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리운전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술에 취한 차주들이 주차 시 인심을 쓰듯 대리운전사를 보내고 직접 운전대를 잡는 행태도 흔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을 방치하고 도망가는 경우엔 기사도 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서로가 처벌을 피하고 음주 주차로 발생할 수 있는 제3의 피해자도 없게 하려면 대리운전으로 주차까지 안전하게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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