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김종필·이회창-이인제·반기문·안희정까지… “뜨기만 하면...”
- 충청 민심, 新충청권 대망론 내세워야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
한 국회 출입 충청권 소재 언론사 기자의 한탄이다. 술좌석이나 식사하는 자리에 가면 이구동성으로 물어보는 게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자 문제를 물어보기 때문이다. 충효와 절개로 유명한 충청도가 ‘性(성)청도가 됐다’고 장탄식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안 전 지사가 성폭력 의혹으로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나면서 민심이 흉흉하다. 그동안 충청도는 영호남 대권 다툼에 끼워 ‘캐스팅보터’, ‘바로미터’ 역할에만 머물러야 했다. 인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김종필 전 총리부터 최근 안 전 지사까지 ‘충청권 대망론’이 존재해 왔다.
 
김 전 총리는 1997년의 13대 대선에 ‘충청 대망론’을 업고 출마했다.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에 맞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선 김 전 총리는 180만 표를 받아 4위에 머물렀다. 다수의 표는 충청도에서 던진 것이었다.
 
이후 김 전 총리는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충청소외론’을 내세워 1회 지방선거와 15대 총선에서 지역을 석권했다. 김 전 총리는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고 YS.DJ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지만 집권 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2인자 정치인생을 살다 쓸쓸히 은퇴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이회창 전 총리도 1997년과 2002년 대선에 출마했다. 특히 이 전 총리는 1997년 대선 직전까지 ‘이회창 대세론’을 이어가면서 사실상 ‘충청 대망론’에 가장 근접했다. 하지만 충청권 분열이 일어났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이인제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불복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9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리는 9,935,718표를 얻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10,326.275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4,925,591표를 받으면서 아깝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인제 후보가 출마를 하지 않았다면 이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공산이 높았다는 점에서 충청 표의 분열은 여전히 아픈 기억이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전 총리는 출마했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한 이인제 후보가 또 이 전 총리의 ‘충청대망론’을 가로막았다. ‘이인제 대세론’을 등에 업고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 역전패 당하면서 ‘노무현 돌풍’의 희생자가 됐다.

이어 노 후보는 정몽준 전 의원과 단일화 후 철회로 선거일 직전까지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57만 표 차이로 승리해 ‘충청대망론’은 재차 사그러들었다.
 
두 번의 ‘이회창 발 충청대망론’이 같은 충청도 출신인 이인제 후보로 인해 무산되면서 이 전 총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18대 총선에서 선전하기도 했지만 19대 총선에서 5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면서 이 전 총리는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치러진 2007년과 2012년에는 충청권 출신 인사들이 대선판에 끼지도 못했다. 2007년에는 영남 출신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의 승자가 대통령이 되는 판이었다.

호남 출신 정동영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역대 최대 표차이인 530만 표로 완패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16만표를 얻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사그라들던 ‘충청 대망론’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에 치러진 조기 대선때였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권 출마설이 나오면서부터다.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뿐만 아니라 대전·충남 등 여야를 초월해 반 전 총장 지원에 적극 나서며 충청권이 하나가 됐다. 반 전 총장의 대권 출마는 충청권에 10년간 인물 가뭄에 단비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관료 출신’ 반 전 총장은 결국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면서 충청권에 큰 상실감을 남겼다. 그때 새 희망으로 부상한 인물이 바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다.

안 전 지사는 충청권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전·현직 지방의원 등 2000여 명이 지지를 선언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그는 지사 시절, 대전·충남과 분위기가 다른 충북도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등 으로 소통하며 충북에서도 지지층을 넓혀 ‘충청대망론’을 이어갔다.
 
이런 광폭 행보로 안 전 지사는 당내 경선에서 2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민주당 집권 후 안 전 지사는 차기 최대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무엇보다 그는 중도 보수 입장도 대변하는 발언으로 문 대통령 지지세력과 갈등을 빚었지만 전 계층을 아우르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안 전 지사마저 연이은 성폭력 의혹으로 정치생명이 최대 위기에 빠지면서 ‘충청 대망론’은 재차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포스트 안희정’을 꿈꾸며 충남지사 당선에 유력했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내연녀 논란’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충청도 젊은 피 수혈도 무산됐다. 여성 문제로 차기와 차차기 인물이 사라진 셈이다.
 
1987년부터 30년간 지속돼 온 ‘충청대망론’이 허무하게 꺼지면서 충청도는 충격과 실의에 빠졌다. 이제 차기 대권을 꿈꿀 수 있는 인사로는 충남 홍성 출신의 이완구 전 총리와 공주 출신 정운찬 전 총리가 그나마 대권 반열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두 인사 모두 대권 가도가 평탄치만은 않다. 이 전 총리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충남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본인은 국회의원 재선거와 당권 도전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다. 벌써부터 ‘이완구 견제론’이 주류측에서 불거진다.
 
이인제 의원이 ‘추대’를 전제로 충남지사 도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필패 카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KBO총재인 정 전 총리는 이 전 총리보다 정치적 경륜이나 경험이 적어 갈길이 더 먼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출마를 저울질하다가 끝내 접은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민주당 이해찬 의원도 여당에서 주목받는 충청권 출신이지만 고령인 데다 하반기 국회의장선거에서도 문희상 의원에게 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분간 충청권 출신 여권 인사들의 정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찾는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이완구 전 총리가 당내 주류 세력의 견제를 뚫고 한국당 대표가 되는 정도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충청권 대망론’은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충청권에서는 ‘젊고 새로운 인물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보다는 충청을 중심으로 하되 외연을 확대해 수도권과 영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중부권 대망론’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이상 제2의 이회장, 이인제, 반기문, 안희정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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