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값 인상의 주범

국내 최대 식품 및 생활용품 제조 기업인 CJ가 지난해 밀가루와 세제 담합에 이어 이달 장기간 설탕까지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담합의 제왕’이라는 오욕을 떠안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의 담합 적발은 지난 1960년대 발생한 삼분사건과 비교할 때 아이템이 시멘트에서 세제로 바뀌었다는 점만 빼고는 밀가루와 설탕의 장기간 담합이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사실 CJ의 담합 역사는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63년 발생한 시멘트, 밀가루, 설탕 등의 소수 독과점 업체들이 폭리를 취했던 이른 바 ‘삼분사건’의 중심에도 당시 삼성그룹으로부터 분가되기 이전의 CJ가 있었다.
이어 1966년 발생한 ‘한비사건’으로 삼성가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는 ‘비운의 황태자’가 되고 말았다.


CJ가 2년 새 ‘생필품 담합 3관왕’이란 불명예에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부터 3차례 적발한 밀가루, 세제, 설탕 가격에 대해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낸 중심에는 항상 CJ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지난 22일 CJ와 삼양사, 대한제당 등 국내 제당 3사가 원료인 원당 수입이 자유화된 지난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5년간이나 설탕 가격을 담합한 것으로 판단해 모두 5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15년 간 설탕가격 담합, 511억 과징금

지난해 3월 밀가루 담합에서도 밀가루 물량과 가격을 담합한 대한제분, 동아제분, CJ, 한국제분, 영남제분, 대선제분, 삼양사, 삼화제분 등 8개 업체에 과징금 434억1700만원을 부과하고 6개 법인과 대표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적발된 세제의 8년 동안 가격 담합에서도 CJ를 포함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CJ라이온 등 4개사가 적발돼 4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관련자들을 고발했다.

지난 1960년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분사건의 학습효과일까. CJ는 일련의 세 건의 담합에서 자진신고나 조사협조를 적절히 활용해 과징금 감면과 고발 면제 등 제재를 비껴가고 있어 현행법상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 프로그램)’를 악용하고 있다며 관련업계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원당의 수입이 91년 이후 자유화됐으나 2000억원이 넘는 공사비가 드는 설탕 생산공장 설립은 다른 기업들에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며 “정부의 15년이란 장기간 담합제기는 억울하며 이에 대한 법적인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J는 공정위 탄생의 산파역(?)

지난 1963년 시멘트, 밀가루, 설탕 등 3개 품목을 소수의 독과점 업체들이 가격과 수량을 조작,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해왔던 것이 적발된 이른바 ‘삼분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의 중심에 삼성가로부터 분가 이전의 CJ가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CJ를 포함 당시 10여개 밀가루 업체들은 담합을 통해 가격을 당시 고시가격의 3배까지 올려 폭리를 취한 사실이 적발됐다. 설탕과 시멘트 업계 역시 고시가격의 3~4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조작했고 탈세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나며 충격을 던졌다. 삼분폭리사건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당시 총 8억7100만원의 법인세가 과세됐다.

특히 1963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이 해당기업들로부터 불법이득을 취하게 해주는 대가로 3800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았던 것도 드러났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선상에서 출범한 이 사건은 당시 혼란스런 정치상황과 맞물려 정경유착과 독과점의 폐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전기가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정부는 그해 7월 종합물가대책을 발표했고 문제의 삼분을 포함, 모두 8개 상품을 통제대상품목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비슷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기획원이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경제연구소의 연구 자료를 참고해 1964년 9월 ‘공정거래법초안’도 작성됐다.

재계에서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씨는 ‘비운의 황태자’로 통하고 있다. 삼분사건 이후 1966년 이후 터진 사카린 밀수사건인 이른 바 ‘한비사건’은 그가 삼성의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당시 건설 중이던 삼성재벌 계열의 한국비료가 건설자재를 가장해 과거 설탕의 대체품인 사카린의 원료인 OTSA 60t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그 중 38t을 금북화학에 내다판 것이 1966년 온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합성화학물인 사카린은 설탕과 같이 단맛이 나지만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판명되고 있다. 특히 방광암을 유발시키는 물질로 현재는 식용 사용에 금기시 되고 있다.


‘비운의 황태자’ 낳은 한비사건

이맹희씨는 지난 93년 ‘회상록-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당시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이 적극 감싼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 밀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965년 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청와대가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고 밀수현장은 자신이 지휘했고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줬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1966년 9월 22일 한국비료공업㈜ 헌납 성명을 발표했고 결국 이맹희 씨 역시 삼성그룹의 후계구도에서 물러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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