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의리’ 화제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독특한 경영방침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회장직에 취임할 당시 ‘신의’를 그룹경영의 최고 가치로 삼았을 정도로 매사에 ‘의리’를 내세우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기까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지내온 세월은 올해로 27년째. 지난 1981년 부친인 고 김종회 선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9세의 나이에 회장을 맡았으니 인생의 절반을 회장으로 산 셈이다. 29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굴지의 대기업 총수에 오른 김승연 회장. 그의 독특한 경영방침에 대해 알아봤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두 개의 상반된 별명을 갖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애칭은 ‘다이너마이트 주니어’. 이는 선친인 고 김종회 회장이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것도 있지만, 화끈한 그의 성격과도 잘 어울려 재계에서는 스스럼없이 그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라고 부른다.

김 회장의 또 다른 애칭으로는 ‘의리의 사나이’란 별명이 있다. 실제로 그는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도 ‘고용승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 1998년 김 회장은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20~30억원 정도 덜 받아도 좋으니 근로자들을 한명도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속하게 매각 작업을 추진해 달라”고 제의한 일화는 아직까지 우리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 때문에 한화에너지 706명과 한화에너지프라자 456명은 완전 고용 승계가 이뤄졌다. 이후 김 회장은 문화의 차이로 다시 한화에 복귀하길 원하는 사람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받아주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번 ‘내 사람’이라고 믿으면 절대로 ‘팽’하지 않는 김승연 회장의 의리경영이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김 회장의 경영 철학

김승연 회장의 ‘의리’는 지난 7월 1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형사8단독 김철환 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결심공판에서 김 회장은 국민들과 다른 경제인들, 한화 임직원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힌 뒤 이번 사건으로 같이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피고인들을 먼저 챙겼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선처해 달라는 타 기업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 회장은 함께 구속기소된 진모 경호과장에 대해 “회사의 안전관리 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변호했다. 또 불구속 기소된 협력업체 대표 김모씨에 대해서도 “협력업체 사장으로 우연히 시간을 같이 보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특히 최후변론의 자리에서 그는 “이런 분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제 자리에 돌아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도록 하고, 모든 책임과 형벌을 나에게 집중시켜 달라”고 요구하며, “이들이 하루빨리 돌아간다면 어떠한 처벌도 담대히 받겠다”고 덧붙였다.

한화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김 회장은 선고공판에서 자신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아 직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고 한다. 그에게 충성하는 임직원들이 적지 않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의리’를 앞세운 김 회장의 일화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1997년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런우드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던 로버트 김에게 수년간 생활비를 지원한 일은 그의 ‘의리’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일화 중 하나다.

이러한 사실은 로버트 김이 지난 2005년 10월 MBC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날 진행자인 김미화씨가 “모든 재산을 재판비용으로 쓰시고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을 텐데, 생활은 어떻게 했나요?”라고 묻자, 로버트 김이 “한화 김승연 회장께서 상당히 오랫동안 뒷바라지해 주셨다. 지금도 해주시고 있다”고 답한 것.

그의 감성적인 성격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1998년 당시 한화그룹 계열사였던 경향신문의 이모 사회부장이 갑작스레 타계하자 김 회장은 무려 8시간이나 빈소에 머물며 목 놓아 통곡했다. 김 회장과 이모 사회부장은 그룹 총수와 노조위원장이라는 묘한 인연으로 얽힌 사이였다. 이날 김 회장은 고인의 장남을 불
러 “아버지가 해야만 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한화의 독특한 윤리강령

‘의리’를 앞세운 한화그룹의 독특한 윤리강령이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특히 원칙이 중시되는 금융 계열사까지 ‘의리’를 윤리강령의 첫머리로 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 계열사인 대한생명보험의 윤리강령은 “신용과 의리를 바탕으로 인류행복을 최고의 기업이념으로 삼아…”로 시작한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증권 계열사인 한화증권 또한 “우리는 신용과 의리를 존중하는 한화인으로서…”가 윤리헌장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타 금융사들의 ‘정직’ 등의 원칙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셈.

이와 같이 ‘신용’과 ‘의리’는 김승연 회장이 제시하는 ‘한화인의 덕목’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