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강세에 인천공항‘북적’, 부유층 도덕적 해이 ‘빨간불’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성별, 국적, 부모다. 그러나 이것은 말뿐인 허언으로 변해버렸다. 트랜스젠더, 원정출산, 입양 등 나라가 글로벌화되면서 공식 또는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현상들이다. 이에 대한 의견들은 분분하다. 그러나 원정출산만은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목적 때문이다. 과거 해외 원정 출산은 지도층의 병역기피 등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에는 병역기피가 아닌 조기유학과 이민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 등지에서 성별을 선별해 임신하고 현지 출산하는 원정 상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원정출산의 목적이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와 개인의 권리의 한계를 벗어 나기 위한 수단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서민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원정출산이 부유층에서 시작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쓴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브로커를 끼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원정출산의 실태를 짚어본다.


지난 4월 포털 사이트에는 이지연 아나운서의 해외 출산을 놓고 설문조사가 벌어졌다. 1990여명이 참가한 설문조사에서 67%의 응답자는 미국 출산은 원정출산의 의도가 있다며 부정적인 답을 내놨다. 의도성이 없었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꺼지지 않는 유행

지난 2004년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의 딸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네티즌들은 원정출산 의혹을 쏟아냈다. 이에 앞서 이 전무는 2000년 1월 첫 아들을 뉴욕에서 출산한 상태여서 비난 여론은 더욱 비등해졌다.

삼성은 첫아들은 유학시절 출생, 딸 출산은 같은 병원을 이용하기 위함“이라고 해명했다.

사회 지도층 또는 유명인의 해외 출산에 대한 논란과 의혹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시각은 과거 일부 지도층들이 자제들의 병역 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층의 해외출산이 그들만의 선민사상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익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지도층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좇다보니 원정출산이라는 개인적인 권리가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씨(34·여)는 최근 고민 중이다. 원정출산을 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첫 아이다보니 무리한 여행이 맘에 걸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원정출산의 장점은 귀가 솔깃하다.

K씨는 “임신 5개월째 접어들면서 남편과 원정출산을 의논했다”며 “경제적 부담도 비교적 적어 첫 애를 위해 미국 원정출산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아이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원정출산은 지난 2004년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미국 원정출산이 다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 현지 한인 언론 등에 따르면 미국 본토를 찾은 원정출산 산모들은 대부분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정부가 원정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인식, 입국심사를 강화하면서 예비 출산자들은 만삭이 되기 전에 입국한 후 현지에서 3~4개월을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이 체류하는 동안 사용하는 비용은 5000만원 이상이라는 것이 현지 한인 언론의 보도다.

특히 최근 원화 강세에 따라 비용 부담이 적어지면서 일부 부유층등이 미국 본토로 떠나고 있다.

부유층의 원정출산은 일반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괌과 사이판 등 미국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선업체들이 본토 비용의 절반 가격으로 상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고객을 모집하는 업체 1곳당 한달 평균 5~10명의 예비 출산자들은 미국 현지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할 수 있는 업체가 20곳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해외 원정을 떠나는 예비 출산자들이 일년에 평균 1000~2000명에 이른다는 것을 추산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외 원정 출산자들의 수는 추정치보다 갑절 이상 많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 중인 대부분의 업체는 미국 본토가 아닌 괌과 사이판 등 비교적 입국 심사가 까다롭지 않은 미국령 지역에 한정돼 있다.

때문에 미국 본토 해외원정까지 합치면 1년 최소 50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신고된 신생아 100명당 1명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셈
이다.


조기유학, 이민 목적

해외 원정출산은 과거 지도층 자제의 병역 기피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지난 2005년 국적법이 개정되면서 해외 원정출산은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국적법이 부모가 해외에 거주할 목적 없이 원정출산을 할 경우 출생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맞춰 이중 국적을 포기토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해외 원정출산을 결정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정출산 경험자들은 안락한 현지 시설과 시민권 등 아이의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사회의 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이와 부모 자신들을 위한 생각도 없지 않다. 이민을 위한 기반 작업일 수 있는 셈이다. 시민권을 가진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한 후 부모를 미국 현지에 초청하면 큰 걸림돌 없이 이민을 갈 수 있다.

본지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원정출산 알선 업체를 확인한 결과, 20여곳 이 넘는 업체가 국내에 브로커 또는 지점을 두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사이트의 공개 게시판을 통해 함께 원정출산을 떠났던 부모들과 현지 업체 관계자들과의 인사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상당수의 사이트 글은 원정출산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다시 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글도 적지 않다.

국내의 고질적인 입시 문제와 맞물려 조기 유학과 이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도 최근 병역기피보다 시민권 취득에 따른 교육기회부여를 강조하고 있다.

시민권을 취득하면 미국 비자을 받을 필요가 없는 등 출입국 제한이 사라진다. 또 이중 국적을 포기하더라도 미국 내에서 직장을 구해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큰 장점은 조기 유학비 절감 효과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원정 출산비보다 높은 효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가 공개하고 있는 원정출산 비용과 조기유학 비용 분석을 보면 시민권을 취득하면 유학비가 갑절가량 줄어들게 된다.

해외 원정출산 비용은 괌을 기준으로 평균 2000만원이 소요된다.

10년 조기 유학을 떠날 경우 시민권이 없으면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등으로 2억6000만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조기유학생은 공립학교에 입학하면 등록금 면제로 1억4000만원이 필요하다. 또 시민권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사회복지 해택도 누릴 수 있다.

재벌계의 해외출산은 강남 부유층과는 조금 다르다. 경영권 승계의 수순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경제계의 설명이다.

해외 진출이 기업의 생사가 달린 만큼 2세가 성인이 되기까지 국제적 교류와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해외진출은 오너의 국제적 감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2세의 시민권 취득을 경영권 계승의 수단인 셈”이라고 말했다.

재계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해외 원정 출산이 새로운 기회라는 인식을 낳고 있다. 또 일반인들의 출산문화를 바꾸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허와 실’

전문가들은 해외 원정출산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미국 본토 원정출산은 까다로운 입국 심사 등의 이유로 임신 5개월로 접어들 때 입국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무리한 여행 등으로 유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특히 사고가 발생해도 알선업체들이 손을 놔버릴 위험이 크다. 일부 업체들은 사고 발생 위험과 책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임산부의 잘못이 아니냐는 대답을 내놨다.

출산후 문제도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산후조리원이라는 업종이 없다. 산후조리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업체들이 내놓은 산후조리원은 단순한 도우미가 있는 숙박시설로 임산부의 서비스는 국내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 입국 후 숙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혀 달라진 식문화와 잠자리로 우울증을 겪는 임산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브로커들이 무분별한 원정출산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에는 국내에서 활동할 원정출산 알선업체 동업자를 찾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임신 중간단계에서 무리하게 해외원정 출산은 위험이 뒤 따른다”고 충고했다.


원정출산 알선업체 직격인터뷰
“산후조리 스스로 하는 경우 많아”


미국 원정출산을 알선하고 있는 A씨는 국내에서 고객을 모집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A씨는 원정출산에 대한 질문에 대해 괌 등 미국령 지역의 환경적 요소를 자랑하지만 막상 산후조리와 사고 대책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최근 모객 수준은.
▲정기적으로 한국으로 건너가 고객을 모집하고 원정출산을 홍보하고 있다. 대략 한 달에 평균 5명이다.

-비용은.
▲기본적으로 1개월 체류를 기준으로 1600만원이 소요된다. 출산과정에서의 병원비와 항공료는 고객 별도 부담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비용은 2000만원에 이른다고 보면 된다.

-고객들은 어떤 부류인가.
▲미국 본토는 비용 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령 지역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회사원이거나 일부 강남에 사는 부유층이다.

-생활은 어떻게 하나.
▲방2개가 딸린 콘도에서 생활하며 취사는 직접 해야 한다. 한국 식품은 비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산후조리시설은 있는가.
▲미국에서는 산후조리원 개념으로 사업자등록이 안 된다. 불가피 하면 도우미를 고용해 콘도에서 몸조리를 해야 한다.

-유산과 제왕절개 수술과정에서 문제 처리는.
▲임신기간에 문제가 있으면 원정출산을 생각해서 안 되는 것이다. 의료기관들이 미국 법률에 따라 설립되기 때문에 낙후된 시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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