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검증은 만만찮은 작업

북한은 핵물질에서 폭탄 제조까지 모두 완성
외부 감시 하에 핵 제거해도 제조 기술은 남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두 달 가량 앞두고 미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을 렉스 틸러슨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미국 행정부 내 대표적 ‘대북 강경론자’인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되기 전까지 북한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국무장관 교체를 가리켜 “북한과의 민감한 협상을 앞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안보팀에 중대한 변화를 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과연 성사될지,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결실이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만약 회담이 이뤄진다면 미국이 북한에 CVID를 어떤 수준과 방식으로 이루라고 요구할지, 그리고 북한은 이 요구에 어떤 수준으로 화답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12일 미국의소리방송(VOA)에 밝힌 바에 따르면, 비핵화 검증의 첫 단계는 북한이 모든 핵 관련 시설을 완전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김정은이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하며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데 대해, 관련 시설에 대한 전면적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가 아닌 ‘제한’을 추진하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라며, 북한은 핵무기 일부를 처음부터 파괴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하이노넨은 강조했다. 하이노넨은 1·2차 북핵 위기 당시 영변 핵 시설 사찰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미국 뉴저지주 호보켄 소재 스티븐스공과대학 명예교수인 이론물리학자 제레미 번스타인이 지난 9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핵무기 역사상 핵무기와 그 제조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유일하다. 이 사실로 미루어 방대하고 정교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모두 해체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지난(至難)한 일이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남아공의 핵 프로그램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산업적 규모로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우라늄 농축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육불화(hexafluoride) 가스를 매우 높은 속도로 튜브 속에 주입함으로써 분열성이 있는 무기급 동위원소인 우라늄 235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에는 혼혈이나 흑인 또는 아시아계가 전적으로 배제된 채 백인 남아공 인력만 참여하는 것이 허용됐다. 이렇게 해서 남아공은 핵폭탄 6개를 제조했으며, 일곱 번째 핵폭탄을 만들던 중 1989년 돌연 전체 프로그램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넘겼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이 나라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음이 지적된다. 남아공이 제조한 핵무기 가운데 폭발 실험을 거친 것은 하나도 없다. 옛 소련 공화국 세 곳, 즉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도 1990년대에 핵무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 나라들이 포기한 핵무기는 스스로 제조한 것이 아니라 소련에서 만든 것이어서 이들 국가가 실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국가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경우다. 1990년대 말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핵무기 기술을 찾아 암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아공과 달리 리바아는 극히 제한적인 기술 인프라만 보유하고 있었다. 카다피는 불법적인 핵 확산 네트워크를 운영했던 파키스탄 핵물리학자이자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에게서 엄청난 돈을 주고 핵물질 꾸러미를 구입했다. 같은 시기에 이란도 같은 꾸러미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을 구입했다. 이것을 끝까지 활용했더라면 이란은 무기급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 프로그램을 구축하기에 충분한 정보와 장비를 보유하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리비아는 중국이 시험했던, 로켓에 장착되는 핵무기의 설계도 구입했다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비록 원심분리 기술을 추구했지만 리비아는 결코 제대로 된 무기제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리비아가 2004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넘긴 것은 실제 폭탄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폭탄 제조 지식이었다. 세간에서는 카다피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것이 그 자신과 리비아를 약화시켰다고 말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문제는 북한 핵이다.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북한 핵무기를 검증한 뒤 모두 제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가?”라는 기자 질문에 “쉽지 않다. 정말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라크, 시리아와 이란 등에서 이런 문제를 다뤘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핵무기를 갖고 있었고 핵 물질을 포함해 핵무기를 약 20개에서 60개 보유하고 있다. 남아공의 경우는 6개에 불과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남아공도 핵무기가 있었지만 매우 간단했다.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하며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접근해야 한다.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번스타인 교수는 북한이 플루토늄을 제조하는 원자로와 매우 정교한 원심분리 프로그램을 보유한 사실에 주목한다. 북한은 핵융합 장치에 사용되는 리튬 6을 매우 많이 제조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북한은 잉여분을 판매하고 있었다고 번스타인 교수는 말했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도 지난해 12월 27일 VOA 인터뷰에서 북한은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물질을 모두 생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북한의 수소탄 개발 역량이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개발 상황을 볼 때 수소탄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핵 개발 진척이 이 정도 수준이므로 북한 핵 프로그램의 검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번스타인 교수는 눈에 보이는 핵 관련 장치를 불능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핵무기 제조방법에 대한 북한 과학자들의 지식을 삭제시킬 수 없는 만큼, 그것을 어떻게 억제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