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리는 황태자들

삼성 이건희,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LG 구본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라는 공통분모 이외에도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대물림 경영’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선친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성과를 올리며 해당기업들을 훌륭하게 키워왔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아 왔다. 성적으로 치면 A+를 받은 셈.
이제 이들에게 쏠려있던 관심의 초점이 경영권 ‘바통’을 이어받을 후계자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삼성그룹 이재용 전무, 기아차 정의선 사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같이 소위 ‘황태자’로 불리는 재벌가 3세들에게로 이동하고 있는 것.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황태자’들이 받아든 중간성적표 결과는 어떨까.


이들은 저마다 회사의 중심에 위치해 대내외적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아버지들이 이뤄놓은 성과가 만만치 않다는 점은 항상 부담으로 작용한다. 비교대상이 언제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승계과정이어서 결과를 단정지어 말한다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현재까지의 성적표만 놓고 본다면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자명하다.

무던히 노력하지만 받아든 성적표가 시원치 않은 ‘황태자’들이 있는가 하는 반면, 웬만한 장애물들은 문제될 것 없다는 듯이 가뿐히 넘어서면서 ‘승승장구’하는 이들도 있다.


고전하는 이재용 전무, 정의선 사장

재계 1·2위 그룹의 차기총수로 유력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나 정용진 기아차 사장은 말 그대로 ‘고전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차기 총수라고는 보이지 않게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경영성적만 놓고 본다면 물음표가 찍힌다는 것이 외부의 시각이다. 이재용 전무는 부친 이건희 회장이 87년 삼성회장으로 취임해 삼성을 일약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과 비교해본다면 더욱 초라한 것이 사실.

이재용 전무의 중간성적을 논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2000년도 초반 야심차게 추진했던 ‘e-삼성’ 사업. 대부분 실패로 결론 나버린 ‘e-삼성’ 사업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했으나 실제로는 이 전무가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이 성공했다면 ‘주마가편’식으로 승계작업이 이뤄졌겠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오랫동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4년부터 삼성이 일본의 소니와 합작한 S-LCD의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사업수완을 발휘했지만 이마저도 2004년에 255억원 적자, 2005년 213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다시금 경영능력에 논란이 일었었다. 이런 전력 때문일까? 작년 말에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삼성의 차기총수가 이재용 전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악성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다행히도 S-LCD가 작년 들어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으며,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의 CCO(글로벌고객 관리책임자)에 취임하면서 긍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이전무의 위치는 확고하다”며 “‘이미 이재용 체제로 전환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의선 사장의 상황은 더 좋지 않은 편. 특히 올해 초에는 기아차의 해외 판매 실적이 좋지 못하고 이로 인한 유동성 위기설까지 겹치면서 최대 고비를 맞기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올해 초 인사를 앞두고서는 ‘다른 우량 계열사로 자리를 옮겨 경영능력에 대한 부담을 덜어낼 것이다’라는 식의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이후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따라 해외순방을 가는 것 말고는 가급적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다. 최근 들어 일부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를 가지며 기아차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밝혔지만 여전히 상황이 호전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외부의 평가다.


정용진, 조현준 등 ‘거침없이 하이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나 효성그룹의 조석래 회장의 아들들은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다.

정용진 부회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실권을 물려받아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마트는 대형마트 부문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굳혔으며, ‘정용진의 작품’으로 알려진 ‘스타벅스’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거침없이 순항’ 중인 것. 간혹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소식들이 신문지상을 오르내리지만 경영능력만 따지자면 또래의 경영인들에 비해 가장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때 커다란 위기를 맞았던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들이 나서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 장남 조현준 사장은 지난해 무역부문의 외형을 50% 이상 성장시켰으며 차남 조현문 부사장도 중공업 부문의 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중국 기업을 인수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효성그룹 내에서 중공업 부문은 섬유사업을 대체할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그룹의 사활이 걸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내인 조현상 전무는 지난해 미국 굿이어와 32억달러 규모의 타이어코드 장기 공급 계약을 주도하는 등 형들 못지않은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삼형제는 총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다.

언급한 이들 이외에도 한진, 두산, 현대백화점 등 여러 재벌가 3세들이 경영수업에 한창이다. 현재까지의 경영성적을 떠나서 이들은 모두 한국경제를 짊어지고 갈 주역임은 분명하다. 과연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경영수업을 마무리하고 해당기업들을 다시금 도약시킬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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