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컬렉트콜 사기’ 내막

이른바 ‘전화 꽃뱀 사기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가운데 국내 유명 기간통신업체인 LG데이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몇 달 동안이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LG데이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건의 내막에 대해 알아봤다.


중국동포 여성 등을 고용해 ‘핑크빛 만남’을 미끼로 인터넷 채팅사이트 남성 회원을 유혹한 뒤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걸게 하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사기단이 적발됐다.

고등학생인 김모(18)군은 최근 인터넷 채팅을 하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머물고 있다는 한 여성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자신의 사진이라고 소개하며 미모의 젊은 여성 사진을 보여준 이 여성은 “곧 한국에 들어가는데 한국에서 사귈 남자친구가 필요하다”면서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컬렉트콜 전화사기 주의

곧 이 여성은 김군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꺼리는 김군에게 “통화료는 내가 부담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킨 뒤 20여 차례에 걸쳐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김군이 통화한 여성은 국제전화사기단이 중국 지역에서 모집한 교포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것. 통화에 사용한 전화도 분당 2000원 정도의 비싼 수신자부담 국제전화였다.

수십만원이 청구된 전화통화 고지서를 받아본 김군은 그제서야 속은 것을 알고 LG데이콤측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지만 ‘수신자 부담 전화라는 안내멘트를 잘 안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러한 피해 사례는 김군뿐만이 아니었다. 무직인 곡모(37)씨는 지난해 말 휴대전화 요금만 500만원이 넘게 나왔다. 인터넷 채팅으로 필리핀에 유학 중이라는 20대 여성을 알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여성은 채팅을 통해 곡씨와 친해지자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수신자 부담으로 곡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통화요금이 걱정됐지만 ‘절반씩 나눠 내자’는 말에 안심한 그는 이후에도 46차례나 이 여성과 통화를 계속했다. 그러나 곡씨가 사기임을 알아챈 건 그로부터 한 달 뒤 500만원 가량의 요금이 적힌 고지서를 받아들고서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기단에 속아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받은 남성은 10만여명, 이들이 부과 받은 통화료만도 무려 5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3일 경찰청 산하 사이버테러 대응센터는 국제전화사기단 4개 조직을 적발, 박모(47)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33)씨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이들의 사기 행각을 알고도 계약해지 등 피해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LG데이콤 영업부장 김모(48)씨 등 2명을 사기행각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고객들에게 책임 전가

특히 LG데이콤측은 2005년 9월부터 피해 민원이 제기되기 시작해 지난해 9월 이후 민원이 급증했는데도 경찰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계약해지는커녕 6개월간 수수방관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LG데이콤측은 1년 9개월만에 31억원의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LG데이콤측은 “고객의 미흡함으로 인한 피해일 뿐”이란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LG데이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믿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지 어디 사기 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약을 했겠느냐”며 “감시나 도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도 답답할 따름”이라고 호소했다.

‘피해사실을 알고도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사이에 비슷한 사례의 피해민원이 폭주해 지난 4월 5일 담당자가 직접 중국으로 찾아가서 1차 경고를 했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민사상 소송에 걸릴 위험도 있고, 1차 경고를 한 만큼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답했다.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안내방송이 있는데도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바보 아니냐”며 “장애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고등학생 등 미성년자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런 걸 하고 있으니”라고 오히려 분통을 터트렸다.

경찰에 불구속된 김씨에 대해서도 관계자는 “김씨는 본사 부장이 아닌 강북지사 영업부장”이라며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부장이란 직함을 준 것일 뿐 실질적으론 영업사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김씨는 퇴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경찰관계자는 “범죄행위를 인식하고도 수익을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기업윤리의 실종이 빚어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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