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 CEO 진두지휘 열전

하이트맥주 박문덕 회장이 마침내 히든카드를 내밀었다. 지난해 ‘처음처럼 돌풍’에 휩쓸려 시장점유율이 하락, 주식시장 재상장에 적신호가 들어온 진로 사령탑에 ‘해결사’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을 전격 투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불꽃을 튀긴 진로와 두산의 ‘소주 전쟁’도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윤 사장은 두산의 공세를 잠재우고 그룹의 최대 현안인 진로 재상장을 성공시켜야 하는 ‘특명’을 안고 있다. 이에 맞서는 한기선 두산 주류BG 사장 역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형국이다. 지난해 출시 후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치솟던 시장점유율이 몇 달째 10%대 안팎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빈틈을 보이면 ‘처음처럼 돌풍’이 일회성 ‘붐’으로 멈출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맥주와 소주 영업에서 각각 잔뼈가 굵은 진로 윤 사장과 두산 한 사장의 ‘소주전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전쟁은 처음이 아니다. 두 사람은 경쟁 업체인 하이트맥주와 OB맥주를 진두지휘하며 한판 승부를 펼친 경험이 있다. 윤 사장이 하이트맥주 사장으로 있던 2002년 1월 진로 출신인 한 사장이 OB맥주 영업총괄 수석부사장으로 영입됐다. 하지만 2003년 12월 한 사장이 대장암 수술로 OB맥주를 떠나면서 이들의 경영전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후 한 사장은 2004년 10월 두산 주류BG 부사장으로 소주 업계로 돌아왔고 이듬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윤 사장이 진로를 맡게 되면서 이번에는 소주 시장에서 진정한 승부를 하게 된 셈이다.


스타 경영자들의 닮은 꼴

두 사람은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윤 사장(57)과 한 사장(56)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연고지도 비슷하다. 윤 사장은 충남 공주 출신이고 한 사장은 충남 당진이 고향이다. 윤 사장이 초등학교를 당진에서 다녔다는 묘한 인연도 있다. 윤 사장은 1975년 당시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에 사원으로 입사해 1999년 첫 공채 출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한 사장은 1978년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1988년 진로그룹 기획조정실로 자리를 옮겼으며 OB맥주를 거쳐 2005년 두산 주류BG 사장에 취임했다. 두 사람 모두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CEO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주류 영업의 최고수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윤 사장은 조선맥주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줄곧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다.

윤 사장은 ‘하이트 신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동양맥주(현 OB맥주)에 밀려 자칫 영원한 2인자로 남을 수 있었던 조선맥주는 1993년 ‘하이트맥주’를 출시하면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 ‘100% 암반천연수’라는 제품 컨셉트가 먹혀들면서 1996년 하이트는 40년 만에 업계 1위로 우뚝 올라선다. 윤 사장은 당시 영업본부장을 맡아 맹활약을 펼쳤다.

한 사장도 만만치 않다. 진로, 두산 소주, 양주(진로발렌타인스), 맥주(OB맥주)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업계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 놓는 ‘히트 제조기’로 통한다. 진로그룹 부도 직후인 1997년 진로의 영업담당 전무를 맡은 한 사장은 그 후 단 3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놓은 ‘참이슬’로 폐색이 드리운 진로를 살려냈다. 당시 진로를 위기로 몰고 간 것은 공교롭게도 두산의 그린소주였다. 두산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그린은 소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1998년에는 시장점유율이 17.8%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돌풍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한 사장이 내놓은 참이슬로 분위기가 일거에 반전됐기 때문이다. ‘처음처럼’에 운명을 건 지금과는 대조적인 형국이다.

그는 2004년 현업에 복귀하자마자 제품개발팀에 알칼리 환원수로 소주를 만들어 보라는 아이디어를 던졌다. 처음에는 알칼리 환원수에 대해 들어본 팀원이 한 명도 없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해 나가는 힘든 과정을 거쳤다. 한 사장은 소비자들이 왜 ‘처음처럼’을 마셔야 되는지 명확하게 이유를 제시해 준 것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나만의 경영 철학과 색깔

ROTC 장교 출신인 윤 사장은 항상 직원들에게 ‘마음먹고 덤비면 안 될게 없다’고 강조한다. 임직원의 단합된 힘과 정신력으로 40년 만에 1위에 오른 ‘하이트 신화’에서 얻은 살아있는 교훈이다. 윤 사장은 8년째 하이트맥주 사장을 맡아 온 장수‘CEO’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위기관리형 CEO’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2005년 진로 인수전에서도 윤 사장의 활약은 빛났다. 두산, 롯데, CJ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황금 두꺼비’ 진로를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하이트맥주는 이들의 허를 찌르며 진로 인수에 성공했다. 윤 사장은 교원공제회, 군인공제회, 새마을금고 등 토종 자본을 끌어들이고 예상가를 훨씬 뛰어넘는 3조4100억 원을 인수액으로 써냈다. 진로가 다른 대기업의 수중에 넘어가면 하이트맥주도 생존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진로의 인수 부담을 말끔히 털어내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정 가격에 진로를 재상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윤 사장이 풀어야할 과제가 아직 산재해 있는 셈이다. 치열해진 진로와 두산의 소주 전쟁에서 윤 사장과 한 사장의 카리스마 있는 승부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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