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 항소심 유죄’후폭풍 <1>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이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남에 따라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유죄판결로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건희 회장과 삼성은 ‘지배구조 및 경영권 승계에 대한 도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비난여론을 무마할 수 있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를 포함해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불법 대선자금 제공, 안기부 X-파일 사건,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으로 인해 사회전반에 걸쳐 일어난 ‘반 삼성’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이 같은 삼성의 조치에 대해 당시에도 지배구조 및 경영권 상속문제 등 ‘근본원인’은 남겨둔 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여론이 거셌다. “이 회장 일가가 편법발행으로 확보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을 통해 그룹 지배권을 장악한 이 회장 일가가 ‘돈’으로 비판여론을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돈’으로 비난여론에서 잠시 비껴났던 삼성 오너일가의 경영권승계 문제가 지난달 29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항소심 유죄판결’로 인해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유죄판결로 인해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게 된 셈이다. 특히 이번 판결에 따라 이건희 일가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카린 밀수사건’, 이건희 회장의 ‘삼성차 문제’, 이재용 전무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 등 그간 삼성가가 짊어지고 있는 멍에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이 회장 일가의 결단뿐”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 회장 일가는 삼성에버랜드 저가 발행으로 챙긴 부당이득을 회사
에 반환하고, 그룹의 지배·승계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같이 ‘경영권 편법 승계 문제’와 관련한 비판여론이 또다시 거세게 일어나면서 이 회장과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그간 ‘짐’으로 남아있는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발표하지 않겠느냐”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시기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될 것”이란 얘기가 그룹안팎에서 나온다.

이 회장이 내놓을 방안과 관련해서도 ‘삼성생명 상장과 맞물린 금융계열사와 산업 계열사간 분리(금산분리)’,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삼성그룹의 일부 경영진 교체 및 체질 개선’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다. 이런 구조 때문에 이 회장과 오너일가는 0.8%의 지분만으로 거대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이 회장 일가는 정부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배구조 개선’압력을 받아왔다.

따라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어떤식으로든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결단을 내릴 것이란 분석이다. 우선,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금산분리’ 얘기가 나온다.

금산법 개정에 의한 ‘금융회사는 비금융계열사의 지분을 5%이상 가질 수 없다’는 원칙으로,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과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결단에는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그룹과 삼성전자 중심의 제조그룹 체제로 이원화’ 방안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이 회장이 금융그룹과 제조그룹을 분리한 뒤, 금융과 산업분야 중 한 곳을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로의 전환’도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방대한 계열사를 정리하고, 삼성전자, 에버랜드, 삼성생명 등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이 회장이 계열사를 일부 정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모색하는 ‘대결단’을 내리고,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노릴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삼성의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 및 지주회사체제 전환 등에 대한 얘기는 소문에 불과하다. 현재의 그룹의 구조상 당장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경영권승계와 무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항소심 유죄판결과 관련해, 삼성측은 성명을 발표하고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은 삼성그룹의 지배권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삼성측은 “96년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계열사 지분은 삼성전자 0.13%, 삼성전관 0.27%, 삼성항공 0.33%, 삼성자동차 1.8%에 불과했다”며 “또 최근 순환출자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대주주가 된 것은 전환사채 발행으로부터 2년이나 지난 뒤인 지난 98년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그나마 당시 에버랜드가 취득한 삼성생명 주식은 공정거래법에 의해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전환사채 발행 당시의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지배권과는 무관한 회사”라고 주장
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관련자들이 공모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제3자에게 배정했다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삼성측의 설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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