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딸 ‘루머’와 이명박 부친 일본인 ‘루머’
- 사적인 이해로 대통령 오른 ‘503호’와 ‘716호’

 
11년 전 이맘때이다.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는 23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수인번호 716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작년 3월 31일에 구속되어 수인번호 503의 영어의 몸으로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두 사람이 이번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한민국의 사법적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여당은 임기 말의 노무현 대통령 인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누가 나와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기 어려운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당 나름대로는 이길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게임에 출전할 선수를 뽑기 위해 나름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야당의 유력 후보였던 두 사람이 모두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전과 14범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쿠데타로 헌정을 중단시킨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라는 여당의 기준에서 보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후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당의 입장에서의 그러한 흠결은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는 달랐다. 이명박 후보는 검증된 경제대통령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둔 후보였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당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그냥 정권을 내줄 수는 없었다. 두 후보의 치명적 약점을 캐내야 했다. 당시 여의도에서 돌고 있던 두 후보에 관한 루머를 밝혀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했다.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을 밝힘으로서 정권 연장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두 후보와 관련된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관여한 적이 있다. 먼저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루머는 결혼을 한 적이 없는 박근혜 후보에게 딸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한국계 미국인 유명 골퍼와 치아가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서였으며, 또 다른 단서는 그녀가 B시의 B여고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미국에 거주 중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물론 확실하게 믿을 만한 이야깃거리는 아니었다.
 
마침 필자는 B시의 B고를 졸업한 터라 이 이야기에 꽤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나이 또래의 B여고의 졸업앨범을 입수하여 샅샅이 조사하였다. 나중에는 B시의 다른 여고 앨범도 조사하였고, 그녀가 다녔음직한 중학교 앨범까지도 조사하였다.
 
그러나 그런 의욕과는 다르게 결과적으로는 헛수고를 하였다. 특징적인 그녀의 치아를 발견해내는 데 졸업앨범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치아가 드러나게끔 졸업사진을 찍은 학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박근혜 후보에게 딸이 있다는 루머도 잠잠해졌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루머는 그의 부모 중의 한 명이 일본인이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설이 꽤나 그럴듯하게 돌아다녔다.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필자는 그러한 루머의 근원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던 이명박 후보의 출생지 주소가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단서였으며, 이명박 후보가 자신이 출간한 책에 쓴 가족에 관한 내용이 나의 판단의 기초자료가 되었다.
 
일본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명박 후보가 출생한 주소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은 오오사카(大阪)시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오오사카에 도착한 필자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그 주소지가 있는 구청이었다.
 
히라노(平野)구청을 방문한 필자는 용감하게도 이명박 후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여주면서 출생신고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필자는 그것이 가장 빠르게 이명박 후보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청의 대응은 아주 사무적이었다. 1945년 이후의 출생자들에 대한 기록은 전산화가 되어 있으나, 그 이전에 출생한 자들의 기록은 창고에 있다는 것이다. 1941년생으로 알려진 이명박 후보의 기록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보여 달라고 하자 본인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으며, 꼭 봐야 한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는 너무나 지당한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팁을 하나 주었는데 그 주소지가 지금은 우유공장이라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구청을 방문한 것이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청을 나와서 전철을 타고 그 주소지를 향했다. 내린 역은 가미(加美)역이었다. 가미역에는 나중에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뒤에 한국 대통령 출생지라는 푯말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 지금은 없어져버리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가미역에서 10여분 걸어서 도착한 곳이 이명박 후보의 출생지라고 알려진 주소지였다. 구청 직원이 말한 대로 우유공장이었다. 이카루가유업(いかるが乳業)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우유공장이었는데, 이명박 후보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목부(牧夫)로 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이 이명박 후보가 출생한 곳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명박 후보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겠구나!
 
또다시 용기를 내어 우유공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직원이 사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사장은 60대 초반으로 가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전후세대로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며, 지금 근무하는 사람들도 그 당시의 일은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근무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은 현재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설마 어머니가 일본인이겠어요!” 그 말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말이었는데, 나는 어머니를 아버지로 해석했다. 그리고 더 이상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멈췄다. 식민지배의 슬픈 우리 역사가 한 가정의 가족사와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때 그들의 출생의 비밀을 끝까지 파헤쳐 그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위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해보지만, 그들이 한 나라의 대통령 권력을 이렇게까지 사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긴 수인번호 716은 애초부터 권력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수인번호 503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욕심으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인데, 그걸 안이하게 생각한 나의 책임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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