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우승의 원동력…워라밸로 ‘행복한 골프’ 즐기겠다

- 부상 복귀 2경기 만에 덜컥 우승, 남편 조언 따라 바꾼 퍼터가 ‘신의 한 수’
- 30대 시작을 우승으로 장식…과거 기대지 않고 박수 받으며 떠나는 것이 목표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골프 여제’ 박인비(30·KB금융그룹)가 시즌 두 번째 출전 만에 우승트로피를 추가해 통산 19승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충분한 휴식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고민하며 스스로가 추구하는 ‘행복한 골퍼’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만 30대를 접어들며 다시금 정상 도전에 나선 박인비의 열정을 만나봤다.

박인비는 지난 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와일드파이어 골프클럽(파72·6679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총상금 150만 달러·한화 약 16억 원)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해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로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 마리나 알렉스(미국),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을 무려 5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4000만 원)였다.

이로써 박인비는 통산 19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3월 HSBC 우먼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1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전날 3라운드까지 14언더파 202타를 쳐 선두에 오른 박인비는 이날 1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고 후반 라운드 12~15번 홀에서 4연속 버디를 낚아 공동 2위 그룹과 차이를 5타로 벌린 채 경기를 마무리했다.
 
몰아친 버디,
5타 차로 정상 등극

 
박인비는 대화를 마친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상 공백기가 길었는데 이렇게 빨리 우승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복귀전을 치렀던 싱가포르에서 공이 잘 맞았고 퍼트를 조금만 더 보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대한 기대가 컷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박인비의 우승 비결로 바뀐 퍼터가 꼽힌다. 그는 그간 헤드가 반달 모양인 말렛 유형의 퍼터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헤드가 일자형인 앤서 스타일 퍼터로 바꿨다. 이는 퍼팅 때 어디에서 실수가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퍼터 교체는 남편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박인비는 퍼터 교체 등 퍼팅에만 올인한 것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휴식으로 돌아본 행복…
부활 원동력

 
하지만 박인비의 부활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휴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인비는 지난 2년간 잇단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는 등 난조를 겪어 왔다.

2016년에는 한국여자골프의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어 왔지만 손가락 부상으로 투어 10개 대회 참가로 만족해야 했고 지난해에는 8월 브리티시 오픈에서 허리를 다쳐 시즌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

덕분에 박인비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휴식기가 길었다. 이는 경기 감각을 되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인비는 7개월 만에 복귀한 뒤 두 경기 만에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빨리 부활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궁금증을 낳고 있지만 박인비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다만 그는 충분한 휴식이 몸과 정신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박인비는 “몸과 정신이 쉬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고 휴식을 가진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재충전된 느낌이었고 다시 경기하고 싶었다”면서 “휴식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우승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걸 보고 산에 단풍이 들고 색이 변하는 걸 봤다. 지난 20년간은 그걸 볼 기회가 없었지만 마침내 보게 됐다”며 “평범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워라밸’을 언급하며 “나의 30대에도 골프 인생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와 함께 박인비를 움직인 건 평창올림픽 성화 봉성이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일(부상)이 자꾸 왜 생기지, 더 이상 골프를 계속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면서 “모처럼 가을에 쉬면서도 골프를 계속하기를 바라는 가족, 주변 사람들과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평창 성화 봉송…
계속해야 할 계기

 
더욱이 그는 골든 슬램(올림픽 금메달,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비롯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만큼 골프를 계속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가 된 것이 갈등하던 마음을 다시 골프로 이끌어 준 계기가 됐다.

박인비는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었다. 국가의 명예로운 행사에 불러주시고 박수까지 보내주시니 리우 때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던 생각이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이번 우승으로 박인비는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았다. 더욱이 만 30세를 3개월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그가 늘 언급해온 ‘행복한 골프’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30대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 좋은 신호탄이 된 것 같다”며 “예전 명성에 기대는 골퍼는 전혀 되고 싶지 않다. 은퇴하던 해에도 3승을 거두었던 아니카 소렌스탐처럼 박수 받으며 떠나는 골퍼의 길을 걷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인비는 앞으로도 많은 대회에 무리하게 출전하기 보다는 메이저 대회 위주로 선택과 집중에 나설 계획이다. 당장 그는 오는 29일 개막하는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인비는 “안정적인 플레이로 꾸준히 메이저 승수를 쌓는 게 목표다. 다음 대회인 기아클래식은 포에나 그린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퍼트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연연하지 않고 경기 감각을 살리고 이어질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 더욱 주력하겠다”고 목표와 각오를 전했다.

한편 박인비는 지난 20일 발표된 롤렉스 여자 골프 세계랭킹에서 랭킹 포인트 5.01점을 기록해 9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지난주까지 19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파운더스컵 우승으로 5개월 만에 세계랭킹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세계랭킹 1위는 19주 연속 펑산산(중국)이 차지했고 렉시 톰슨(미국), 유소연, 박소연이 2, 3, 4위를 기록했다. 5위는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이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 김인경을 제치고 이름을 올렸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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