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동족상잔 비극과 절대 빈곤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적 갈등 극복…미래 먹을거리 찾고 국민대통합으로 나가야

 
2018년은 대한민국 건국(建國) 70년이 되는 해이다. 일흔을 맞이해 지나온 70년을 갈무리하고 다가올 7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제여건은 악화하고 있고,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분열로 인한 우리 내부의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지난 70년간 동족 상잔의 비극과 절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주화와 개방화를 동시에 성취하는 ‘성공신화’를 일궈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70년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 신화(神話)를 창조한 ‘경이(驚異)의 시대’였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굶주림의 대명사인 ‘보릿고개’를 극복한 자랑스러운 시기였고, 패배주의를 떨치고 무역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간 팽창의 시대였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방앗간이 유일한 산업이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초고층 빌딩과 세계적 수준의 최첨단 정보통신(IT) 산업을 거느리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우리나라의 현대 경제사는 그 자체로 민족의 웅대한 ‘서사시’가 됐다. 세계 역사상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국가는 일찍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피폐하고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동북아의 신생 독립국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경기도 대변인을 지낸 이우철 한국공공정책학회 전문연구위원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배고프게 살던 국민들이 ‘하면 된다’ ‘잘살아보자’는 의식이 고취되면서 경제성장을 일궈냈으며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여러 차례 추진되면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건국 초기의 경제 관련 통계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국가의 틀이 잡히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제대로 된 통계가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오래된 통계가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것으로 당시 GDP는 13억 달러, 1인당 GNI는 67 달러였다.
 
이후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근검 절약 속에 경제 개발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GDP는 1972년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1986년 1천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주미대사관 경제외교관을 지낸 송하성 경기대 교수는 “가발을 수출하던 시절에는 제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워낙 없어 금성TV를 외국에서 보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동포들은 한국 자동차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고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해외 수출 초창기를 회고했다.
 
1인당 GNI 역시 1977년에 1천 달러, 1995년에 1만 달러를 각각 넘었다. 그러나 지난 70년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국민을 궁핍과 죽음의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정치적 격변인 4.19와 5.16도 겪었고 1, 2차 오일쇼크를 견뎌냈으며, 1997년 말에는 나라의 곳간(외환보유액)이 텅텅 비는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의 핵심 산업은 경쟁력을 키워 선박,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분야는 세계 1위를 자랑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50여년 전 내걸었던 ‘수출입국’이라는 모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군이 버리고 간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 자동차를 신기한 듯 쳐다보던 어린아이가 이제 성공한 노년이 되어 국산 고급차를 살까 수입 자동차를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소득 향상과 식생활 개선, 의료수준 향상 등으로 평균 수명(기대수명)도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북한과의 경제력 비교에서도 확연하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체제의 승리다.
 
해방 이후 건국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주의 대신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다함께 잘 살자’는 공산주의를 택했던 북한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지만 개방과 경쟁의 길로 들어선 남한은 미증유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두영택 광주여대 교수는 “건국 이후 우리나라가 비약적 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교육열과 개방지향적 경제정책이었다”면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 진화하는 데 영국은 200년, 독일과 일본은 10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30년 만에 해냈다”고 뿌듯해 했다. 이처럼 건국 이후 한국 경제가 기적 같은 발전을 이뤘지만 ‘압축 성장’의 후유증으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성장 탄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후진적 정치와 허약한 국정 리더십, 극복되지 않고 있는 지역간 계층 간 갈등, 진보와 보수의 헤게모니 다툼, 빈부 격차 등으로 국력이 분산되면서 국가 전반의 경제 역동성이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후세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가 막막하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선진국의 척도로 불리는 중산층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정부의 관심 소홀과 정책 부재로 종잇장처럼 얇아졌고 청년실업을 비롯한 신규 일자리 창출 문제가 대두되는 등 경제 활력이 고갈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상 경제강국이지만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아 해외 발(發) 위기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있는 국가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유가가 폭등하면 물가를 비롯한 각종 거시지표가 완충없이 바로 충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 주요 선진국들은 더 멀리 달아나고 있고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 신흥 경제국가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계경제를 잠식하며 우리나라의 통상 기반을 흔들고 있다.
 
두영택 교수는 “지난 30년간은 일류를 폄하하고 약자만을 내세움으로써 열심히 하고자 하는 동기는 사라지고 내 실패를 부자나 대기업 등 앞서가는 남들 탓으로 돌리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됐다”면서 “모든 국민이 부(富)와 명예를 쌓는 데 신명이 나도록 하지 않고서는 일류 선진국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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